좌충우돌 선교지에서 살아남기!

by wecrun

저는 선교지에서 4년째 살고 있습니다. 2019년 7월에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이곳에 왔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낯선 곳이라 이상하고 힘들었지만 살다 보니 조금씩 적응이 되면서 이제는 좀 편해졌습니다.

처음 6개월 동안은 홈스쿨링을 하고 그 이후에 현지 학교에 가려고 했는데 코로나가 시작되어 학교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온라인으로 수업받게 되었습니다. 온라인 수업은 친구를 못 만나고 언어가 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편하게 에어컨 밑에서 쉴 수 있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1년이 지나서 ‘드디어 학교에 가는구나!’ 하며 기대하고 있었는데 코로나는 끈질겼습니다. 그렇게 또다시 1년을 지냈습니다.

2년간 온라인으로만 공부하다가 오프라인으로 학교가 시작되면서 저희 3남매는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학교의 인상이 별로 좋지 않아 엄마에게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렸으나 엄마가 한번 시도해 보자고 해서 결국 입학시험을 보았습니다. 이미 현지 학교의 과정으로 공부는 해봤지만, 직접 가는 것은 처음이라 긴장이 되었습니다. 첫발을 떼는 것이 무척 두려웠는데 그곳 아이들은 저에게 많은 관심을 보여 주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왔다 하니 ‘아 진짜? 나 너 차이나에서 온 줄 알았어’라고 했습니다. 한류 덕에 아이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고 빨리 친해졌습니다. (방탄소년단, 블랙 핑크, 뉴진스 파이팅!) 그렇게 친구들과 잘 지내고 수업에도 적응하면서 지금까지 1년 4개월 동안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학교 수업을 영어로 하는 것은 괜찮은데, 300자 에세이 쓰기 같은 거의 대학교 수준의 과제와 그 나라 역사 수업과 특히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등등 정말 힘든 게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학교에서 겪은 일 중 가장 어이없는 것은 반 남자애의 놀림이었습니다. ‘재는 바퀴벌레 먹는다’ 라던가 ‘킴줭운 킴줭운’이라며 놀려댔습니다. 그럴 때마다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나중에는 선생님께 말해서 선생님이 그 아이에게 주의를 주었는데도 그 아이는 계속 했습니다.

그리고 제일 속상했고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그 아이가 동양인 인종차별 중 하나인 눈 찢기를 제 앞에서 대놓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눈 양쪽을 늘려 눈이 비교적 작은 동양인을 비하하는 것이라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이 일로 우리는 선생님과 긴 대화를 했고 그 아이의 부모님에게도 선생님이 말했지만 그 아이는 계속했습니다.

지금도 비록 진행형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그래도 괜찮아져서 그 아이와 농담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4년간 좌충우돌하며 저는 이곳에서 적응하고 있습니다.


글 가득 (생수, 강물 선교사의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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