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 아니라면 이 나라에 올 일이 있었을까? 아마… 없었겠지?”
“그렇지… 시골 마을에 들어 갈 이유도 아마… 없었을 거야, 그치?”
두 번의 정탐을 다녀온 후, 남편과 내가 주고 받은 말이다. 우리의 깜냥은, 딱 이만큼이다!
작년 12월 두 주, 그리고 올해 2월 다시 한번의 방문을 통해 우리는 기후와 문화, 여러 삶의 방식이 다른 N지역 세네갈을 경험했다. 그리고 1800년대, 복음이 이 땅에 들어온 이후 한 번도 선교사가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는 F지역의 한마을을 주님이 우리 마음속에 떨구어 주셔서 큰 기쁨으로 받았다. 사하라 사막의 끝자락에 있는 ‘무슬림 100% 마을’, 연평균 강수량이 300mm도 못 되어 농사조차 어려운 땅, 세네갈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로 하루 두 끼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마을 간호사의 설명이 마음을 후비고 들어왔다.
주님 보내시니 기쁨으로 준비하면서도, 막상 들어가서 살게 될 곳의 상황을 두 번째로 보고 온 날 이후로, 마음 한편에 걱정이라는 놈이 자꾸만 꾸물대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팀으로 같이 들어가기로 한 동료 M은 2년 차, 우리는 3년 차, 이렇게 몽땅 다 신입들이 한 번도 선교사가 있었던 적이 없는 곳에 팀을 꾸려 ‘개척자’로 들어간다니. 걱정을 넘어서 두려움마저도 생길 지경이었다.
싱글인 동료 M은 우리보다 더 힘들어했다. 그녀가 결정을 미루어 두고 있었던 어느 월요일 저녁, 여느 때와 같이 우리 셋은 ZOOM으로 기도하려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그날 참으로 재미나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각각 그 주간에 받은 말씀들을 나누는데, 아 글쎄 모두 다 똑같은 단어가 들어 있는 성경 구절을 나누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동료 M과 처음으로 요한계시록 12장 6절을 나눈 후, 남편의 시편 29장 8절까지 듣고 나는 완전 소름 끼쳤다. 왜냐하면 내가 사도행전 8장을 받았기 때문이고,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일어난 그 신기한 일이 예루살렘이 아니라 왜 광야에서일까’라고 묵상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그 똑같은 단어는 바로 ‘광야’였다.
사실 새로운 지역 방문 후, 그러니까 ‘주님이 우리를 그곳으로 부르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은 다음부터 우리에게 ‘광야’라는 단어는 광야 그 이상의 의미였다. 더군다나 우리 부부가 가진 유일한 달란트, 음악적인 재능마저 그곳 사람들의 현실적인 삶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 세 사람이 서로 동일한 시간대에 이 ‘광야’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말씀을 받은 것은, 마치 기드온이 양털을 가지고 확신을 받기 위해 드린 절절한 기도의 응답과도 같은 것이었다. 너무나도 확실한 응답 말이다. 소름 끼치는 그 상황 속에서 우리는 ‘순종’이라는 작은 마음을 감사의 눈물로 올려드렸다. 그 마음마저 사실은, 주님이 주시는 것이라는 걸 배우면서…
아직 마을로 들어가는 전 단계이지만 우리는 같은 팀으로 이 지역에 간다는 것을 확증 받은 후 서로 호흡을 맞추며 팀을 위해 기도를 시작했다. 그런데 기도 제목들이 참으로 재미난다.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팀이지만, 우리는 벌써 우리 말고 앞으로 들어오게 될, 정해지지도 않은 뉴 멤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며, 이사도 가기 전 그곳의 ‘부흥’을 위해 기도한다! 회심한 자가 하나도 없지만 우리는 팀 안에 ‘F지역 현지인’이 함께 사역하는 것을 꿈꾸며, 아주 당돌하게 이것저것을 아버지께 아뢴다! 그런데 정말이지 아주 재미있는 것은 그러고 있으면 어느샌가 굵은 믿음의 줄기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쑥쑥 자라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는 거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했는가! 우리는 우리가 믿는 말씀대로 광야에 길이, 사막에 강이 나는 것을 볼 것이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이사야 43장 19절-
주님! 음악사역, 의료사역, 지역개발, 행정 및 교육분야에 까지 너무나 많은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보내주소서!
글 이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