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환경과 문화 그곳의 관습으로 인한 오해들을 많이 경험했다. 다름을 인정하기까지 일상에 크고 작은 여러 가지가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럴 때마다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생각했다.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죄인인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관습과 사회 제도 안에 들어오셔서 하나님의 구원을 완성하신 것을 생각하며,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을 위해 이들의 사회 속에서 잘 살아가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영적인 힘을 공급받기 위해 날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기를 쉬지 않으려 애를 많이 썼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일상의 하나의 습관과 같은 것이 된 것을 발견했다. 예수님을 사랑해서, 이 땅의 영혼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마치 이교도들이 예식을 드리듯이…… 이교도의 축제일이 다가올 때면 예민하게 깨어 기도하며 이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우상숭배를 하는 것에 대해 용서해 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애통함으로 간절히 기도했었다. 어느 순간 그 사랑이 메말라 버린 나의 기도를 느낄 때는 다시 주의 도우심을 구한다.
“처음 주신 사랑의 마음으로 다시 이 땅을 품고 기도하게 하소서.” 오직 주님만이 나의 모든 일상의 습관을 의미 있게, 생명 있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학사과정을 할 때 캠퍼스 복음화를 위해 6개월 동안 땅 밟기 기도를 하였다. 그 후 석사과정을 하면서도 3개월 동안 세 번의 땅 밟기 기도를 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영적 전쟁을 치렀던 생각이 난다. 땅 밟기 기도를 시작한 처음 3분의 1의 시간들은 위험들이 눈에 도드라지게 보일 정도로 나타났다. 차가 갑자기 달려들어 사고가 날 뻔했던 일, 타고 가던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아 차에서 굴러 떨어지려는 순간에 같이 타고 있던 현지인이 붙잡아 주었던 일,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달려오던 오토바이에 부딪힐 뻔했던 일, 갑자기 상황들이 아주 나쁘게 바뀌며 힘들었던 여러 번의 일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다음 3분의 1은 특별히 위험을 느끼지 못하고 무사히 지나갔다.
마지막 3분의 1이 지날 때는 땅 밟기 기도 시간을 통해 기쁨을 느끼며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기도의 응답을 얻었던 경험이 있다.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해 땅 밟기 기도를 하지 못하여 집에서 손을 들고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원숭이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려 하여 많이 놀라고 긴장했던 일이 있었다. 기도를 할 때 이를 방해하려는 위협이 있지만 기도를 통해서 영적 승리를 경험한다.
이 땅에서 사역자로서 온전히 살아가지 못하도록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공격들은 끊임없이 여러 모양으로 다가온다. 그 하나는 건강이다. 건강이라면 항상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온 지 6개월 만에 현지 음식을 먹고 탈이 났고, 섭씨 50도가 넘는 더운 날씨에 적응하지 못해서 3개월 정도를 꼼짝없이 집안에 누워있어야만 했었다. 이렇게 회복이 되어 지금까지 이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다. 또 하나는 외로움이다. 혼자이건 가족이 있건 상관없이 모두에게 어김없이 찾아와 본질을 흐린다.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을 흐리고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어떤 이에게는 배우자를 찾기에 급급하도록, 또 다른 이들에게는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에 매달리게 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관계의 어려움이다. 마땅히 연합하고 하나되어야 하는 팀 내에서 오해를 만들고, 한번 꼬였던 일에 계속 꼬리를 이어 관계를 어렵게 만들고 그것이 화석화 되도록 한다. 회복을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여도 벗어나지 못하는 관계의 어려움에서 결국 주님께 도우심을 구하며 손들고 나아갈 때 승리를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우리의 삶을 흔들어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막상해야 하는 일들을 하지 못하도록 공격당할 때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임을 다시 배우게 된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곳이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의 전적인 보호하심과 동행이 아니면 살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살 수밖에 없기에 이 삶이 매력적이고, 행복하고,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 기도하면 생각나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신 것에 순종하면 열매를 보게 하신다. 매일의 영적 전쟁 가운데서 누리는 평안은 오직 나의 구원자 되신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는 증거이다.
글 앤드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