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히 하실 하나님

by wecrun

 어느덧 이 땅에 온 지 4년이 흘렀다. 코로나로 인해 제대로 본국 방문을 못 했던 터라 지난 5월 초 두 달의 일정으로 온 가족이 한국을 방문했다. 우리 가족 5명이 거주할 마땅한 선교관을 찾지 못해서 일단 친정에서 머물기로 했다. 오랜만에 부모님과 함께 보내니 기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기쁨과 함께 얼마 지나지 않아 도전도 찾아왔다. 일찍 잠자리에 드시는 부모님들과 달리 안 그래도 늦게 자는 우리 집 아이들은 시차의 영향으로 매일 12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세 명의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부모님이 깨시지는 않을지 마음을 졸였다. 밤마다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신신당부하던 나는 아이들과 좀 더 마음 편하게 지낼 곳을 알아봤지만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그러자 마음 한편에는 남은 시간 동안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과 한 달여의 시간을 보낸 후, 6월 초에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고 일주일 후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엄마만 집에 덩그러니 남았다. 모든 것이 너무 갑작스러웠고 당황스러웠지만 엄마 곁에 우리 가족이 함께 있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그제야 왜 선교관이 안 구해졌는지 이해가 되었다. 아빠의 마지막 시간을 이미 아신 주님께서 아빠와의 마지막 한 달을 우리 가족에게 선물로 주셨던 것이다.

 4년을 못 봤던 그리운 할아버지와의 시간은 아이들에게 소중한 선물이 되었다.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부모님의 비보를 듣고 마지막 인사도 못 한 채 부모님을 떠나보내는데, 주님은 우리가 이곳에 오기를 기다리셨다가 아빠를 데려가신 것만 같았다. 아빠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리는 모든 과정 동안 우리 가족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배려가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다. 마치 한 달간은 아빠와 마지막 시간을, 또 다른 한 달간은 엄마 옆에서 위로가 되라고 주신 시간 같았다.

 아빠가 쓰러지시던 날 현지 대사관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우리 가족의 비자가 모두 나왔다는 소식이었다. 마음 졸이고 걱정하던 비자였는데 주님은 그날 비자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우리의 마음이 가족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이다.

 한국에서의 폭풍 같은 시간을 뒤로하고 새 비자를 받아 선교지로 돌아와서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두려움 때문에 건강검진을 받지 않던 엄마에게 검진을 받으시라고 권유했었는데 우리가 떠난 후 받으신 건강검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엄마는 직장암을 선고받았다. 이제 막 떠나왔는데 엄마가 혼자 겪어야 할 쉽지 않은 과정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엄마는 당신에게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셨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를 꺼리셨다. 남들의 눈이 중요한 엄마에게 찾아온 암은 알리고 싶지 않은 존재였다. 이후 수술이 진행되었고 엄마는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뚫고 나가야 했다.

 회복의 과정에 많이 힘들어하던 엄마는, 어느날 전화로 내가 언제쯤 한국에 다시 올 계획인지 물었다. 선교지로 이제 막 돌아온 나는 엄마의 질문의 이유를 알기에 마음 한편이 아파왔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정말 한국에서 일주일만 엄마 곁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올라왔고 그러지 못하는 현실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고 힘든 시간에 함께 있어 주지 못하는 것은 마음을 참 아프게 하는 것 같다. 그저 마음속으로 나직이 주님의 이름을 불렀다. ‘주님… 아시지요? 엄마를 돌보아 주세요.’ 현재 엄마는 직장 재연결 수술 후 다시 몸이 적응하는 과정으로 힘겹게 싸워내고 있다.

 엄마의 아픈 시간에 육체적으로는 함께하지 못하지만, 주님께서 언니와 동생들을 통해 엄마를 돌보아 주시고 말씀으로 힘을 공급해 주셨다. 또한 주님은 내가 기도를 통해 엄마의 수술에 함께하고 엄마의 아픈 시간을 함께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물론 육체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믿음 안에서 멀리서나마 함께 싸울 수 있다는 것은 믿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은혜요 특권일 것이다. 엄마가 이전보다 주님 안에서 더 단단해져 가고 있는 것을 보며 우리의 빈자리를 채우고도 남으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리게 된다.

 4년 동안 못 만났던 사랑하는 이와의 마지막 시간을 준비해 주신 주님, 한국 땅에서 우리 대신 빈자리를 채우고 계신 주님, 우리가 작은 것을 드렸을 때 넘치도록 채우시는 분임을 고백한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에베소서 3:20)   

                                                                                                                                                                                                          글 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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