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 세는 밤

by wecrun

늦은 나이에 선교사로 부름을 받고 순종할 마음을 주셔서 “예”하고 선교사가 되었다. 선교사가 되기전 이런 생각이 있었다. 선교사는 모든 ‘성화’의 과정을 다 끝낸, 그야말로 ‘예수님을 가장 닮은’ 사람일 것이라고 또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열악한 나라로 떠날 준비를 하는 우리 부부에게 선배 선교사님들이 사랑과 염려를 담은 조언들을 주셨다. 그중에 “열악한 환경에 계속 있다 보면 깻잎 한 장을 가지고 팀원들끼리 싸우기도 해요”라는 말씀도 있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가당치도 않습니다. 우리는 선교사인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지에서 발견한 ‘선교사인 나’는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유치하고, 나잇값도 못하던지… 날마다 ‘긍휼히 여겨주시는 은혜’, ‘덮어주시는 은혜’, 넘어진 나를 일으켜서 붙들고 가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아니면, 선교사는커녕 호흡조차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처절하게 알게 하셨다.

우리가 살던 곳은 너무 덥고 습해서, 깻잎은 고사하고 신선한 채소조차 보기가 힘든 곳이다. 나는 외부 사역을 할 수 없는 S 비자를 받았기에 팀원을 섬기는 일과 중보기도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 땅의 영혼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구현, 그리고 팀원들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밤마다 주님과 독대하며 온 마음을 쏟는 그런 기도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중보의 자리에서도 한국의 중보자들에게 나누기조차 부끄러운, ‘깻잎’을 열심히 세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여기서 ‘깻잎’이라 함은 ‘선교적이지도 않고, 본질과는 아무 상관 없는, 극히 감정적이고, 쓸데없는, 유치하기까지 한 모든 것’을 포함하는 말이다.

혼돈과 자괴감을 넘어, 선교사에 대한 절망과 낙심으로 선교사를 그만두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자리에 드러누웠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성령님께서 친히 찾아오셔서 ‘조곤조곤’ 말씀하시며 뒤엉킨 생각을 걸러내시고 정렬시켜 주셨다. “선교지는 24시간 영적 전쟁터란다. 전쟁터가 조용한 것 본 적 있니? 팀원들과의 관계, 팀 안팎의 크고 작은 문제… 다 있을 수 있어.” 선교 현장이 영적 전쟁터라는 깊은 인식이 없었던 것과 사단의 전략에 속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셨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음에 도,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모든 영적 에너지를 쏟게 하고, 그것에 몰입되어 ‘주님의 일’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사단의 전략이었다.

정신이 퍼뜩 들었다. ‘깻잎’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 눌리고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세 있는 이름으로 그 문제를 다스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나를 일으켜 세우시고 문제 위에 서서 ‘주님 나라와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할 수 있게 하신 주님을 찬양한다.

선교사가 되고 나서 늘 가지고 있었던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도 대답해 주셨다. “주님! 제가 소위 선교사인데요, 저는 밥만 하고, 기도 자리에 앉아서도 자주 깻잎을 세는데, 저, 선교하는 것 맞나요?”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말이야. 여러 사람에게 이 땅에 같이 오자고 초청했거든, 그런데 어떤 이는 장례 때문에, 어떤 이는 결혼을 해서, 또 다른 이는 사업을 새로 시작했다며 ‘다음에 갈게요’라고 했는데, 너희는 나의 초청에 ‘예’하고 순종한 그것이 바로 ‘선교’란다.” “주님은 ‘선교하시는 하나님’이신데, 저 같은 것 데려다가 왜 속을 썩고 계세요?” “맞아! 나는 돌들을 들어서라도 할 수 있어. 그런데 너를 왜 불렀냐 하면, 이 땅이 내 앞으로 돌아와 예배할 그날, ‘영광의 날’, ‘기쁨의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거든. 그날, 너와 함께, 같이 기뻐하고 싶어서란다.”

부족하기가 이를 데 없는 사람이지만 “예”하고 순종한 것을 ‘선교’라고 말씀하시고, 그 땅이 구원 받는 날에 나와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으셔서 나를 부르셨다는 선교하시는 하나님! 그 땅에서 주님 앞에 머물러 있는 것이 ‘선교’이며, ‘부름에 대한 순종’이라고 하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부끄럽지만, 여건만 되면 또 깻잎을 세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깨어서 주님 앞으로 나아간다. 열방을 구원하기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 예수의 이름으로 승리를 선포하며, 깻잎을 세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며’ 나아간다. 여호와 닛시! wec

글 황기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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