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 십여 년 살면서 크고 작은 홍수를 경험하였지만, 이렇게 광범위하고 치명적인 피해를 남긴 홍수는 이번이 처음이다. 나이 든 태국인조차도 이런 일은 처음 봤다고 했다.
이 피해를 고스란히 받으며 홍수와 싸웠던 우리 교회 두 성도가 있다. 피에오와 그녀의 딸 넝엠이다. 이들은 반산띠숙교회 개척 초기부터 출석하여 지금 기둥 같은 일꾼으로 성장하였다. 치앙마이 시내를 관통하는 삥강 옆에서 고령의 어머니를 모시며 살고 있는 피에오는 전직 무당이었다. 10년 전쯤 예수님을 믿고 모든 것을 버리고, 지금은 신실하게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
이번에 있었던 두 번의 홍수가 피에오의 집과 그 동네를 집어삼켰다. 첫 번째 홍수로 피에오의 반지하 방과 그 주변 동네가 온통 물에 잠겼다. 처음 소식을 듣고 급히 구호품을 싣고 한참을 돌아 겨우 피에오의 집을 찾아갔는데 홍수로 물이 불은 탓에, 나와 아내는 바지를 걷어 올리고 무릎까지 잠긴 골목을 걸어서 겨우 구호품을 전해 주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피에오는 얼굴에 웃음이 있었다. 많은 것을 잃었지만 몸은 건강하니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첫 번째 홍수는 그럭저럭 견딜 수 있었다.
일주일 만에 두 번째 홍수가 예보되었다. 피에오는 반지하에 물이 넘치지 않도록 벽돌을 50센티 정도 쌓았다. 나름 대비한다고 했지만, 두 번째 홍수는 모두의 대비를 허무하게 만들었다. 물은 새로 쌓은 벽돌을 넘어서 겨우 청소를 마친 반지하 방을 가득 채우고, 주방을 지나, 급기야 윗방으로 연결된 계단까지 하나씩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날 밤 피에오는 이웃집 몇 사람과 함께 그 윗방에 대피해 있었다. 같은 시간 나는 집에서 이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삥강은 사상 최고의 높이를 기록했고 결국 범람하며 그 주변을 초토화했다. 관광지로 유명한 이 지역 야시장도 1미터 정도 물에 잠겼다. 피에오는 이웃들과 함께 위층 방에 고립되었다. 물은 멈추지 않고 차올랐다. 그날 피에오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저의 생명을 맡깁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셨다. 물은 마지막 한 계단을 남기고 멈췄다. 할렐루야! 하지만 그렇게 사흘을 그 방에서 버텨야 했다. 그때 하필 피에오의 상처 난 발이 세균에 감염되었다. 나중에 물이 빠져 피에오를 만났을 때는 감염된 발로 인해 제대로 걸을 수 없었고, 몸을 겨우 지탱할 정도로 지쳐있었다.


물이 빠지자, 모두가 본격적으로 피해 복구에 나섰다. 홍수가 지나간 자리는 집 안팎 가릴 것 없이 갯벌처럼 변해있었다. 물에 잠겼던 살림살이는 흉흉한 쓰레기로, 집 안 구석구석은 진흙탕으로 바뀌어 있었다. 복구 첫날은 나와 아내 그리고 성도 한 명이 함께했는데,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그야말로 눈앞이 깜깜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SNS에 도움을 요청했다. 다음날 이곳의 선교사 몇 명과 홍수로 휴교 중인 선교사 자녀 학교의 학생 몇 명이 합류했다. 사람 수가 많아지니 조금씩 일이 진행됐다. 하지만 겨우 마당 청소만 했고 여전히 집 안팎은 진흙으로 켜켜이 쌓여 있었다. 다음날에는 전에 동역했던 태국교회에서 도움의 손길이 왔다. 태국교회가 반응하니 더욱 반가웠다. 피에오의 딸 넝엠의 집도 물에 잠겨 있었는데 이날 물이 빠져 그 집에 먼저 가서 일을 시작했다. 문 앞에는 쓰레기가 대문 높이만큼 쌓여 있었다. 힘을 모아 그 쓰레기를 트럭 두 대에 실어서 버렸다. 그리고 전날 마치지 못한 피에오의 맞은편 이웃집으로 가서 집 안 가득한 진흙을 버리는 일을 도왔다. 동네의 이웃들이 감격하며 고마워했다.
주일이 되어 피에오와 넝엠이 지친 몸을 이끌고 교회에 왔다. 피에오는 ‘홍수 한 번이면 다 씻겨 사라질 것들을 사랑하지 말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들을 사랑하자’라며 눈물로 간증했다. 그의 고백이 모두의 가슴을 울렸다.
이 홍수는 우리와 교회에도 도전이었다. 처음 홍수가 났을 때부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고 힘썼다. 하나님께서 함께 일할 사람을 보내 주셨고, 각처에서 수해 헌금을 보내 이들을 포함한 그 주변 이웃들을 돕게 하셨다.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했고, 적게라도 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어서 감사했다. 무엇보다도 두 모녀가 환난 중에서도 신앙으로 더 가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얼마 전 피에오는 불편한 몸으로 오토바이를 타다가 바닥의 진흙으로 인해 넘어져서 큰 타박상을 입었다. 하지만 피에오는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잠24:16)” 말씀을 붙들고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했다. 홍수는 분명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 갔지만, 의인은 여전히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며, 교회는 주저하지 않고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있음에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wec
글 김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