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주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회심 전, 어린 나이에도 친구들은 “너는 참 인복이 많다”고 말하곤 했다.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내게 “만남의 축복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곳 UAE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가정은 옆 나라 오만에서 약 열 달을 지낸 뒤 UAE로 이사했다. 오만의 시골 마을은 보수적이고 제한적인 분위기가 강했다. 그러다가 UAE로 옮겨 오면서 나는 조금 더 자유로운 복장을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아랍식 의상은 선반 위에 올려두고, 더운 날씨에 어울리는 얇은 반팔 티셔츠를 입기 시작했다. 그 무렵 친구를 달라고 기도하고 있었고, 그때 한 생각이 떠올랐다. ‘네가 준비되면 준비된 자를 붙여 주리라.’ 마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 같았다. 그 이후 나는 선반 위에 올려두었던 옷들을 다시 꺼내 입었다. 마침, UAE에서 국경일 행사가 열렸고, 그곳에서 우리 가족은 S와 그녀의 남매를 만났다. 그녀는 내 휴대폰에 아랍어 키보드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랐고, 나는 그녀의 휴대폰에 한글 자판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알고 보니 그녀의 부전공은 한국어였다. 이후 그녀는 문자를 통해 내가 어느 병원에서 일하는지 물어왔다. 아마도 내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알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병원 사진을 보내며 곧 다시 열 계획이라고 말하자, 그녀는 자신이 바로 그 병원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며칠 뒤, 그녀는 우리 가족을 초대했고 ‘우리 집에 온 첫 외국인’이라며 극진히 대접했다. 우리는 매주 만나 서로의 언어를 가르쳐 주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그러나 아랍어는 여전히 어려웠다. 작년 여름 두 달간 한국을 다녀오는 사이, 그나마 익숙해진 아랍어 실력이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아랍어 성경 읽기를 도와주던 시니어 멤버 M과의 수업이 끝난 어느 날, 나는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제 아랍어 실력으로 현지인과 아랍어로 성경을 읽을 날이 올까요?”
M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 사람은 오랜 시간 끝에 탁월한 언어 실력을 갖추어 많은 열매를 맺었고, 다른 한 사람은 언어는 부족했지만, 현지인들에게 깊은 사랑으로 기억되었다고 했다. 두 번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눈물을 흘렸다. 언어가 탁월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일은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즈음, 우리 가정은 방 하나를 비워 기도실로 꾸미고 팀원 누구나 사용하도록 열어 두었다. 어느 토요일, S는 오늘만큼은 영어 없이 아랍어만 쓰자고 제안했다. 거실에 앉아 있던 그녀를 그 방으로 안내했는데, 방을 보자마자 기도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 방이 기도실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곧 다과를 준비하며 한국에서 첫째 아이가 만든 머그컵을 꺼냈다.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글씨와 십자가가 그려진 컵이었다. S는 ‘여호와’의 뜻을 물었고, 그 질문은 자연스럽게 성경 이야기로 이어졌다. 내 아랍어로는 부족해 영어를 섞어야 했지만, 우리는 한 시간 넘게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랍어 성경을 함께 읽었다.
대화가 끝난 뒤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S는 웃으며 말했다. “오늘 영어 썼네.”
그날 저녁, S는 나를 자신의 가족 피크닉에 초대했다. 혹시 민감한 이야기로 불편하지는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그녀의 초대는 나를 안심시켰다. 돌이켜보면 그 만남은 분명 그녀를 위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는 것은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서로의 믿음을 존중하며 언어와 음식을 나누고 있다. 그녀와의 만남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이었고, 선물이었다. 아랍어로 성경을 읽었던 그 시간은 그녀뿐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격려와 위로였다. w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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