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후에 보게 된다면?
작년 성탄절, 74세의 Es가 리더로 있는 작은 가정교회 성탄 예배에 초대받았다. 그는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복음에 열정적이었다. 풍성한 식탁 앞 아내는 내 왼쪽에, 한 중년 여성은 내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 나는 평소 무슬림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의 간증에 관심이 많았다. 그들은 흔히 꿈속에서 빛나고 흰 옷 입은 예수님을 보거나, 주님의 사랑 어린 음성을 듣는다. 또 십자가를 보거나 병 고침을 받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듣기 힘든 간증이다.
그래서 그 여성에게 물었다.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셨나요?” 그녀는 대답했다. “아주 오래전이에요. 한 18년쯤 됐네요. 그때 전화하면 간증이 나오고 성경을 들려주는 곳이 있었어요. 전화를 걸었더니 애민이라는 형제와 다른 자매분이 저를 만나줘서 전도 받았죠.” 나는 놀라 아내에게 말했다. “자기야, 들었어? 이분이 당신이 참여했던 전화 자동응답 사역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됐대. 애민이 그때 자원봉사자였잖아?” 아내는 깜짝 놀랐고, 그 순간은 성탄예배의 잊지 못할 장면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말했다. “그때는 전화 음질도 안 좋고, 언어 한계와 보안 문제도 많았는데, 18년이 지나서야 결실을 보게 되다니. 사육O-OO오공, 그 번호를 어떻게 잊겠어.”
지금 돌이켜보면 그 방식은 원시적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직접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다. 이번에 만난 자매도 그 기도 열매 중 하나였을 것이다. 우리는 눈물로 씨앗을 뿌린다. 그러나 열매가 언제, 어떻게 맺힐지는 주님만 아신다. 아내가 18년 넘게 이곳에 있었기에 그 열매를 보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천국에서나 그녀 Nare를 껴안으며 기뻐하지 않았을까?


나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기적으로 땅밟기 기도를 한다. 때로는 팀원과 함께하지만, 혼자 낯선 지역에 가서 시편 97, 98, 100편을 읽으며 말씀을 선포한다. 기도 중 만나는 사람이 있으면 복음을 전하기도 한다.
작년 봄, Q지역으로 리트릿을 떠났다. 사흘째 되던 날, 버드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와 말했다. “Qonaq olun!” (우리집에 오세요!) 나는 속으로 ‘할렐루야’를 외쳤다. 그러나 집에 가보니 남자는 지적 장애인이었고, 90세 노모와 뇌성소아마비 아들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손님을 대접하느라 분주했다. 처음의 기쁨은 사라지고, 나는 난감해졌다. 저녁에 아내와 통화했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일 꼭 다시 가봐. 예수님이 필요한 가정이네.” 나는 불만을 털어놓았다. “대화가 안 돼.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그럼에도 다음 날 과자와 과일을 들고 다시 갔다. 그러나 상황은 같았다. 아내는 또 물었다. “복음 전했어?” 기가 찼다. 말이 안 통한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리트릿을 마치고 몇 달 후, 아내가 제안했다. “기도만 하지 말고 이번에는 Es님과 같이 가보자.” 우리는 연락처도 없이 200km를 달려 다시 방문했다. 아내 Qul에게 복음을 전했다. 놀랍게도 그녀는 열린 마음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였다. 이 나라에 살면서 그렇게 거부감 없이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그 후 우리는 Qul을 지역 교회와 연결해 주었다. 남편Ni는 지적장애와 발작으로 이후에도 병원에 자주 입원했고, 독한 약으로 점점 지적 퇴행이 심해졌다. 어느 날 복음을 전했을 때 그는 “모하메드”의 이름을 부르며 거부했다. 실망했지만, 분명 영적 세력이 그를 붙잡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
그 후, 어느 봄날 Ni와 Qul을 긴급히 방문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 3시간을 달려갔다. 그날 Ni는 유창하게 성경을 읽더니 큰 소리로 영접기도를 따라 했다. 잊지 못할 기쁨의 날이었다. 그러나 며칠 후, Ni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수님을 영접한 지 3일 만이었다. 아내 Qul은 남편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했지만, 우리가 전하는 천국 소망의 말씀을 조용히 들었다. 위로를 위해 온 친척 두 명도 복음을 받아들였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행 16:31) 이 말씀은 지금도 그 가정과 친척들 가운데 생생히 이루어지고 있다. wec
글 강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