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운동회에서 결승선을 통과한 뒤 느끼던 안도의 한숨이 있습니다. 출발선에서의 긴장감과는 전혀 다른, 깊고 진하게 벅차오르는 감정이었습니다. 그 순간의 숨결이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떠오릅니다. 2019년 초, WEC국제선교회 한국본부의 새로운 대표로 섬기기 위해 그 출발선에 섰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라는 말씀을 붙들고, 하늘의 뜻이 이 땅에, 특히 복음의 빛이 한 번도 비치지 않은 어둠의 땅에 충만히 임하기를 소망하며 첫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그리고 이제,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선 앞에 서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정은 ‘감사’입니다. 어떻게 지난 7년여를 이 섬김의 자리에서 감당해 올 수 있었을까요? 인간의 계획과 능력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전 세계를 멈춰 세운 COVID-19 팬데믹이라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 방향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몰랐던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분의 임재는 때로는 고요한 위로로, 때로는 강력한 인도하심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돌아보면, 이 시간은 단순한 사역의 연속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주권을 더 깊이 배우는 여정이었습니다. 대표로서의 사역 중 만난 수많은 도전과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단순히 ‘이미 정해진 운명’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우리의 기도와 순종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더욱 깊이 깨달았습니다. 창조와 주님의 재림 사이에 놓인 역사의 공간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그분의 일에 동역하게 하셨습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며 WEC선교회의 비전인 미전도종족 선교에 집중했고, 복음의 빛이 아직 닿지 않은 어둠의 땅에 한 줄기 빛이라도 더 비추기 위해 함께 달렸습니다.
그럼에도 복음이 닿지 않은 땅은 여전히 너무 많습니다. 하늘 아버지의 사랑의 그림자조차 느끼지 못하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사이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동역자들을 통해 열방 가운데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목격했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복음의 등불, 인간의 힘이 아닌 성령의 역사와 돌파, 그리고 동역자들과 함께 흘린 눈물과 기도가 작은 씨앗이 되어 뿌려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 씨앗이 자라 열매 맺는 모습을 함께 볼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으로 놀라운 특권이었습니다. 누가 이렇게 가까이서 하나님을 보고, 듣고, 경험할 수 있을까요? 그 은혜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한국본부에서 저희의 부족함을 메우며 동역하신 모든 본부 사역자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결코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경험들이 앞으로의 사역에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섬기는 도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의 헌신과 사랑, 그리고 함께 흘린 눈물은 이 여정의 가장 귀한 보석이었습니다.
이제 저희는 대표로서의 역할을 내려놓고 잠시 쉼을 가진 후, 동아시아 권역 대표(East Asia Area Director)로 새로운 사역의 여정을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도의 부담은 결코 내려놓지 않겠습니다. 한국본부와 함께하는 또 다른 여정 속에서, 주님 오시기 전까지 계속 기도할 것입니다. 한국본부의 모든 사역과 삶 안에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고백과 사명이 우리 모두의 걸음 속에 계속 울려 퍼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wec
2025년 가을의 문턱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