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영상의 한 장면에 할머니 한 분이 거의 움직임이 없는 자세로 침대에 누워있다. 딸로 보이는 여인이 조그만 기타를 들고 옆에 서서 “엄마, 이 노래 기억나세요?” 하면서 노래를 시작한다.
‘When I was just a little girl, I asked my mother What will I be? Will I be pretty? Will I be rich? Here’s what she said to me” 이렇게 노래를 부르자, 힘이 없어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은 노모는 딸과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 노래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히치콕 감독의 영화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에 나오는 주제곡으로, 한국인들에게도 멜로디가 매우 친숙한 바로 ‘케 세라 세라’이다. 위의 장면은 아마도 임종을 앞둔 노모에게 어린 시절에 엄마가 했던 말들을 상기시키며, 위로해 주는 딸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나는 이 노래의 의미에 있어서 한가지 오해가 있었다. ‘케 세라, 세라~’ 이 말을 이제까지 운명론적인 말로 해석했던 것 같다. 그리스도인으로서는 감히 하지 말아야 하는 말처럼, 힘들거나 어려우면 ‘에이, 될 대로 돼라, 난 모르겠다.’ 뭐 이런 정도로 이해했던 것이다. 만약에 그런 뜻이었다면 임종을 앞둔 엄마에게 딸이 그렇게 웃으면서 친절하게 그 노래를 부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의문이 생긴 필자는 곧바로 스페인에 있는 선교사에게 그 뜻이 스페인어로 어떠한 뜻이며, 어떤 상황에서 쓰이는 것인지를 물었다. 친절하게 그 뜻과 용례를 설명해 주었는데, 현지에서 그리 잘 사용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굳이 해석하자면 스페인어로 ‘Que sera sera’는 내가 생각했던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위로와 격려를 할 때 사용되는 긍정적인 의미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될 대로 되겠지’가 아니라 ‘될 일은 반드시 될 거예요, 힘을 내세요!’ 그런 의미라는 것이다. 이 말에 대한 오해를 벗어난 새로운 이해는 필자의 마음속에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요즘 우리는 시대의 상황을 반영하는 부정적인 뉴스들을 쉽게 접하게 된다. 그런 소식들은 마치 수년 안에 모든 것이 붕괴할 것 같은 불안감을 조성한다. 환경문제, 인구문제, 경제문제, 종교문제 및 교회의 여러 문제들과 그 외의 수 많은 문제들이 세상에 가득하다. 이러한 세상의 종말론적인 현상은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불안하게 만들어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에 쉽게 현혹되게 한다.
선교적으로도 동일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선교의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 땅에서의 선교(missional life)를 강조하고, 새로운 방향을 찾기 위한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 분명 그 노력과 시도는 가치가 있고, 깨어 세대를 분별하는 성도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초점을 잃어버리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
세계 선교라는 거대 담론 앞에 다양한 방법과 전략을 생각해 볼 수는 있지만, 세계 선교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초점(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자들에게 나아가는 선교)을 잃어버린 채 불안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상황에 맞는 적절한 타협점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주님이 행하실 선교의 그림이 결국에는 완성될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케 세라 세라’는 현실을 넘어서 약속을 이루시는 아버지를 신뢰함에서 오는 여유와 위로로 다가온다.
우리는 주님의 명령과 간절한 소망인 온 땅의 복음화를 위해 초점을 맞추어 나아가지만, 이런 불안한 세대에서 긴장되고 경직된 상태로 선교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속도와 방향에 맞게 걸어가는 것을 배울 때 주어지는 여유를 가질(마11:29) 필요가 있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세계 선교는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을 함께 기대하고 즐기는 마음으로 2024년을 이루어 가기를 소망한다. wec
2024년 봄을 기대하며
글 김재형, 강경화 (한국 WEC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