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눔’이라는 미국의 한 비영리단체에서 ‘휠체어 재단’을 통해 240대의 휠체어가 이 땅에 전달되었다. 여러 나라에 ‘사랑의 휠체어’라는 이름으로 19년여 동안 이어진 나눔의 손길이 이 땅까지 닿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처음 휠체어 공급 소식을 접하고, 구호 물품을 받은 경험이 없던 우리는 내부적인 논의로 분주했다.
휠체어 프로젝트의 비전은 무엇인지, 개인별 맞춤 보정 없이 나누어도 될지, 휠체어를 받는 60%가 6개월 후에는 사용하지 않는다던데, 그들의 의존성만 키우는 것은 아닌지, 필요한 사람들에게 투명하게 전달될 수 있을지, 분배에 필요한 재정은 있는지 등의 제기된 현실적인 염려들로 머리가 복잡한 어느 날, 아내가 휠체어를 왜 받고 싶은지 물었다. 통관과 배분에 대한 염려가 있었지만, 입에선 “우리들의 작은 수고로 한 사람이라도 휠체어를 타고 자유롭게 밖으로 나갈 수 있다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라는 말이 나왔다. 뻔한 대답같지만 이렇게 어설픈 비전이 만들어져 휠체어를 받기로 마음먹었다.
외무부, 보건부, 경제개발부, 관세청 등에 필요한 서류작업이 완료되어 마침내 무관세 통관 서신을 받았을 땐,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입에서 저절로 나왔다. 그런데 구체적인 실무를 논의 하고자 찾아간 보건부 차관은 “무관세 통관을 위해 보건부를 이용만 하려 한 것 아닌가요? 장애인 협회 대상자 목록보다는, 우리 것을 사용하세요!”라며 언성을 높였다. 통역을 맡은 현지 직원의 억울한 표정과 함께 나의 입에서 힘없이 “몇 달 전 부터 만나 뵙기를 원했는데 바쁜 업무로 시간을 내실 수 없다는 답변을 계속 들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시간을 내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미팅 막바지엔 차관이 미안했는지 근심 어린 표정의 나에게 다스려진 감정으로 말을 맺었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은 마세요!”
분배식을 며칠 앞두고 예정된 날짜에 분배식을 할 수 없다는 보건부의 의견을 들었을 땐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다음 날, 감사하게도 예정한 날짜로 분배식을 하겠다는 통보에 또 한 번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마음으로 외쳤다.
제조공장에서 원재료의 부족과 운송 지연 등으로, 휠체어 배분 논의가 시작된 지 거의 10개월이 흐른 시점인 7월 중순에야 휠체어가 도착했다. 휠체어를 받는 날, 컨테이너 안에 잔뜩 쌓여 있는 눈부신 하얀 휠체어 상자가 얼마나 아름답던지. 컨테이너에서 잘려 나가 땅 위에 버려진, ‘Customs Service Under The Government of ~’라는 글자가 새겨진 보랏빛 작은 자물쇠를 얼른 주머니에 넣었다.
흥겨운 휠체어 분배식이 있던 날, 인사의 말씀을 전하며, 보랏빛 자물쇠를 주머니에서 꺼내 들었다. “여러분, 끊어진 이 자물쇠가 누군가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만, 저에겐 너무나 소중해서 버리지 않고 저의 보물상자에 보관할 겁니다. 하나님이 앞으로 계속해서 저의 보물상자를 이러한 자물쇠로 가득 채우는 은혜를 주시길 기도합니다.” 참여한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하나님의 마음에도 울렸으리라.
휠체어를 받은 분들과 그 가족들의 감사 인사와 미소가 사진에 기록되었다. 한 아주머니는 생일에 휠체어를 받았다 했고, 7살 아이의 어머니는 이제 아이가 휠체어를 타고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분은 임시로 만든 바퀴 달린 낮은 침대에 누워서 왔다가 휠체어에 앉아 집으로 갔다. 주인 잃은 침대를 보는데 속에서 눈물이 왈칵 올라왔다. 분배식에 감동한 사진사는 수고한 일당을 반려하기도 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로 올려드린 우리의 염려들을 모두 은혜로 응답해 주셨다. 단순 분배가 아니라 훈련받은 현지 직원들이 휠체어 수령자들을 위해 후속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하였고, 관련 정부 부서 및 장애인협회의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대부분 주도권을 유지한 채 의도한 대로 휠체어를 분배하였으며, 분배와 분배식을 위해 필요했던 모든 재정이 놀랍게 채워졌다.
하나님이 하신 일에, 그리고 이 일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며 지원해 주시고 기도로 응원해 주신 모든 분의 수고에 감사한다. 얼떨결에 만들어진 휠체어 프로젝트의 비전처럼 휠체어를 받으신 모든 분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기를,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만남의 기회를 통해 그들의 세상 안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글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