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롬4:18)
공항에서
23kg의 제한된 무게에 맞추어 꾸린 짐가방을 밀고 우리 가족이 새롭게 살게 될 세번째 중동 땅에 들어섰다. 언어는 동일한 아랍어인데 현지인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석유와 천연가스로 부(富)를 얻은 걸프지역의 화려한 인프라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안정된 팀에 합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터를 세워 나가야 한다는 중압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새로 온 팀원을 반갑게 맞아주는 선발대 남편의 모습에서 부르신 분의 속삭임을 듣는 것 같다. “겸손히 내가 할 일을 기대하고 따라오너라.” 공항을 나서는데 이 더위가 실화인가 싶다.
관광 비자로 할 수 있는 건
오랫동안 문을 닫았던 선교병원을 다시 열기 위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법인으로 등록하고 병원 라이센스를 다시 얻을 때까지 우리가 소속된 곳은 없기에 현재 신분은 관광객이다. 관광 비자로는 집을 구할 수도 주 정부와 일을 시작할 수도 없다. 변화하는 시대에 특히 코로나 유행 이후로 모든 절차는 온라인을 통해 진행해야만 하는데 거주비자가 없는 우리는 첫 페이지에 적어 넣을 ID가 없다. 사업의 윤곽을 결정하고 허락하였던 정부 관리들의 도움을 받아 일선 공무원들을 설득해야 한다. 전혀 해 보지 않았던 낯선 일들을 배워가면서,
부딪쳐가면서 헤쳐 나간다.
영적 전쟁터의 실제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히12:1)
불확실성에서 오는 두려움과 일보 전진을 막는 여러 공격들에 우리는 주께로 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 경건회에 모인 세 명의 팀원들이 기도회를 인도한다. 위로부터 오는 평안을 붙들고 기도할 때마다 위로와 확신을 허락하시는 분을 만나게 된다. 이미 예상치 못했던 암 진단과 치료의 과정 가운데 중보기도의 위력을 맛보지 않았던가? 이 사역을 위해 어딘가에서 ‘함께 손 모으고 있다’는 짧은 메시지가 감사의 제사가 된다.
대형마켓의 넘쳐나는 식재료와는 대조적으로 덮밥 하나 마련해서 우리를 부른 회사 식구와의 교제와 세 분의 선배 선생님들이 주관하시는 비스킷 하나 제공되지 않는 월요 말씀 공부시간은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가을 내내 사도 바울의 열정적인 발자취를 따라가는 사도행전이 본문이었던 것도 우리가 왜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를 확인시켜 주시는 것 같다. 은퇴를 앞둔 유럽의 목사님 한 분이 사역이 다시 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하여 서로에게 큰 격려가 되는 만남을 가졌다. 계속 전진하라 말씀하시는 것 같다.
외국인 노동자, 현지인 그리고 그리스도인
도움의 손길들을 통해 우리의 숙소이자 사무실이 되어 줄 공간을 찾아 전기, 수도와 인터넷을 연결하였다. 전자제품과 가구들을 구하러 나가 만나는 상점의 점원들은 한결같이 모두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동남아 친구들은 거의가 한류의 열풍 아래 있다고 보면 되는데, 반갑게 인사하며 왜 이곳에 왔는지를 묻는다. 병원을 시작하려 한다는 소문은 금세 퍼져 나가 나중에 자신들도 일 할 수 있을지 기대에 차서 연락처를 건네 준다. 대다수가 가족을 떠나 홀로 외화를 벌고 있는 실정이라 그들의 뒷모습은 외롭고 피곤해 보인다. 그에 반해 집집마다 여러 명의 가사 도우미를 고용하고 있는 현지인 친구들은 다양한 취미활동으로 삶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건내 준 선물들은 그 전에 받아보지 못한 고가의 기념품들이다. 내 아랍어 이름을 곱게 써 작은 액자를 만들어 준 대학생 J의 선물은 다시 한번 이 민족의 손님접대 경향을 가늠하게 한다. 정성스러운 손편지엔 ‘이모’, ‘사랑해요’라는 한글 단어들도 눈에 띈다. 어떻게 복음에 대해 완고하게 닫힌 마음을 핑계 대며 이들을 외면할 수 있을까?
감추어진 사람들을 소개 시켜 달라고, 그런 평화의 사람을 통해 온 가족이 말씀을 들을 기회를 주시도록 아버지께 구하게 된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국제 교회는 여러 대륙의 사람들이 모인 다양함이 피부 색깔에서 드러난다. 연약한 이방인들의 모임으로 보이지만 아버지의 언약이 실현될 것을 꿈꾸는 공동체로 살아가기를 축복하며 어색한 영어 찬양에 내 목소리를 더해 본다.
글 캐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