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방어의 벽을 뛰어넘다

by wecrun

나와 아내는 지난 6년 동안 이곳에서 다양한 삶을 경험했다. 어떤 일은 매우 도전적이었고, 어떤 일은 하나님의 은혜와 기쁨으로 가득했다.이 L 지역을 포함한 남부 지방에는 아제르바이잔 인구의 0.9%를 차지하는 탈리시족이 산다. 이들은 대체로 보수적인 시아파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란의 종교적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그래서 이란과 교류가 많은 편이고, 이슬람 성지 메카에 다녀온 사람들은 큰 존경을 받는다. 이곳 사람들은 매우 방어적이다. 일단 기독교 이야기를 꺼내면 곧장 이슬람의 두꺼운 방어벽을 세운다. 우리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자신이 아는 얄팍한 종교 지식을 녹음기처럼 반복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코란조차 읽어본 적이 없지만, 이슬람은 그들의 문화와 역사에 깊이 스며든 삶의 방식 그 자체이다. 우리 집은 모스크와 그곳에서 일하는 ‘물라’(Mullah이슬람 지도자)의 집 사이에 있다. 나는 그와 직접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고, 그가 마을을 돌아다니거나이웃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본 적이 없다. 다만, 그가 기도 시간을 알리기 위해 차를 몰고 모스크로 가는 모습만 몇 번 보았을 뿐이다. 이렇게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이웃들에게 가능한 한 조심히 행동하려 애쓴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마당을 가로질러 울려 퍼지는 하루 세 번의 기도 방송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고 오히려 영적 전쟁의 신호처럼 들린다. 지금은 매해 반복되는 무하람(Muharram, 애도의 40일 기간)이다. 마호메트의 사위이자 후계자였던 알리의 아들 후세인의 죽음을 기리는 시간이다. 우리는 이때 특별히 영적 전쟁을 경험한다. 자녀들이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거나, 우리 자신도 쉽게 짜증과 분노에 휩싸인다. 현지인들은 복음에 반응하지 않거나 적대적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작년에는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딸 N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한 것이다. 아이와 함께 기도할 때, 나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딸은 물건을 나누며 사랑을 보이려 했지만, 오히려 모욕감을 느꼈다. 결국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아 했다. 선생님께 이야기도 했지만 도움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아이를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시고 다시 기쁨을 주실 거라고 위로했다. 팀 동료들에게도 상황을 나누었고, 그들은 컨퍼런스에서 우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었다. 얼마 후 한 소녀의 가족이 마을로 이사와 딸의 반에 합류했다. 선생님이 자리를 바꾸어 두 아이를 나란히 앉혔고, 곧 단짝 친구가 되어 학교에서 즐겁게 지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자녀를 친히 돌보신 것이다. 우리 마을의 Sm(65세)은 우리가 처음 이사 왔을 때부터 마음을 열고 다가온 사람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일정한 수입이 없어 가정 형편이 어렵다. 그녀의 딸은 남편 없이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남편이 감옥에 있기 때문에 살림에 신경을 써야 하지만, 부모를 돕지는 않고 겉모습 꾸미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어려운 상황을 회피하거나 정신적으로 아픈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Sm이 복음을 완전히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복음을 전할 때마다 그녀의 가족에게안 좋은 일이 생겼다. 본인이나 가족이 아프거나사고를 당하는 것이다. 사실 Sm은 뇌종양과 간질을 앓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몇 달 전 이 가족을 방문한 현지인 전도자가 똑같이 뇌종양과 간질을 앓았는데 주님의 치유로 자유함을 얻은 사람이었다. 그가 간증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힘 있게 전한 후 간절히 기도했더니, Sm과 딸은 놀라운 평안을 경험했다. 며칠 후, Sm은 우리 가정 교회 모임에도 참석했다. Sm의 마음이 계속 열리고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딸 안에 있는 견고한 진이 무너지도록, 이 소망 없는 가정이 복음으로 변화되도록 함께 기도한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에스겔 22:30) wec

글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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