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나무에 비유한다면 청년(靑年)의 시기는 초록 잎사귀가 왕성히 자라고 있는 모습일 것이다. 인생의 꽃다운 시기를 걷고 있는 대만 청년들의 삶은 어떠한 모습일까? 지난 2년 동안 캠퍼스에서 관찰한 대만 청년 사역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
대만 학생들의 겉모습은 매우 수수하다. 무더운 날씨 탓에 겉모습을 치장해도 금세 화장이 지워져서 잘 꾸미지 않는 이유도 있겠지만 남 눈치를 보지 않고 패션보다는 실용성을 더 따지는 분위기이다. 대만 학생들의 마음도 매우 순수하다. 청년들 모임에 술이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밤새도록 이야기꽃을 피우고 카드 게임을 하며 노는 친구들이다. 명절 때 집에 방문하는 학생들은 고향 음식을 먹어보라고 손수 음식을 싸 와서 주는 정이 많은 학생들이다. 아직 손편지 문화가 남아 있어 마음을 담은 손편지를 주고받는 모습을 종종 볼 수가 있다. 또한 대만은 사회적으로 개인 의 자유와 의견을 매우 중요하게 인정해 주기에 학생들도 본인의 생각과 의견을 우회하지 않고, 분명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동시에 서로에 대한 예의를 분명하게 지킨다.
예를 들어 지하철 안에서 서로의 옷깃이라도 스치면 거의 동시에 서로를 향해 실례한다(不好意思BuHaoYiSi)고 외친다. 약자를 보호하고 웃어른을 존중하는 문화가 남아 있어 버스에서 노약자석은 종종 빈칸으로 남아있으며, 젊은이들이 자연스럽게 어르신분들께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서로의 다름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강한 사회적인 분위기로 인해 동성애(LGBT) 운동도 매우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서로의 차이를 쉽게 수용하는 문화 탓에 다른 종교를 쉽게 받아들이며, 사회적으로 종교 혼합주의가 만연하다. 서로 다른 종교의 모습을 동시에 인정하면서 필요에 따라 다양한 잡신을 숭배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가 있다. 길거리와 집안에 작은 사당을 모셔놓고 도교, 불교, 전통 신앙이 혼재되어 잡신을 숭배할 뿐만 아니라 서로의 다른 종교도 거부감 없이 인정하는 문화가 팽배하다. 이러한 사회적, 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하신 구세주라는 점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대만에서 기독교 인구는 전체 인구에서 약 6%로 추정하고 있으며, 그중 젊은이 비율은 지극히 낮다. 캠퍼스에서 체감으로 느끼는 기독교인 비율은 약 100명 중의 1명 정도이다. 특히 필자가 속한 국립대학은 강단에서 특정 종교에 대한 언급을 불허 하는 규정이 있다. 그 때문에 캠퍼스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에 창의적인 방법으로 복음을 자연스럽게 전하는 것이 관건이다. 예컨대 필자의 컴퓨터 배경 화면은 일부러 복음과 관련된 한글 문구가 적혀있다. 한류 열풍으로 한글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학생의 질문을 받으면, 바로 복음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브랜딩 관련 수업에서 일부러 학생들에게 누가 본인들의 이름을 지었으며 어떤 분이 당신을 창조했느냐라는 질문을 이어서 제기한다. 디지털 마케팅 수업 시간에는 AI 서비스 로봇과 인간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차이에 대해 분석하면서 무엇이 인간을 인간으로 규명하는가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며, 창조주에 대한 질문을 자아낸다. 최근에 맡은 기업 윤리 교과목을 통해서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탐심과 양심 사이에 개인이 당면하는 윤리적 딜레마 분석을 통해 선한 영향력의 중요성과 개인 삶의 태도로 논의를 확장한다.
이러한 노력 끝에 오랫동안 교제를 해오던 학생이 교회에 나온다고 해서 내심 기뻤다. 하지만 결국 여러 신 중에 하나의 신으로만 섬기고 싶다는 말에 크게 낙심한 경험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포기하지 않고 주 안에서 복음을 전할 힘은 나를 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끊임없는 사랑 때문이다. 대만 청년들이 삶 가운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하신 구원자 되심을 선포하는 것을 보기 원하며, 그날이 속히 오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글 박성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