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향한 손

by wecrun

나는 지금 사역하고 있는 이곳에 오기 전, 몇년간 다른 지역에서 언어 공부를 했었다. 그곳은 아시안 여성에게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고, 인종차별 때문에 마음이 어려울 때가 많았다. 물론 아버지의 나라를 위해 그곳에 있다는 강한 동기가 있었기에 의연하게 넘겼지만, 여전히 환영받지 못한 듯한 느낌은 금붕어 똥처럼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니며 찝찝함을 남겼었다.

언어 공부 기간을 끝내고 이곳 공항에 도착했을 때 보았던 파란 하늘, 하얀 뭉게구름, 시원하게 쭉 뻗은 야자수, 한숨 가득 들어오는 이국의 냄새들이 나를 반겼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 느껴지는 친절함과 생기에 이전과는 다른 일들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마음이 저절로 부풀었다. 심지어 택시에서 내릴 때 환한 표정의 기사로부터 전에는 이 언어로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인사를 들었다. 그 순간 나는 이제야 나를 열렬히 환영하는, 마땅히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왔고 좋은 사람들과 복된 소식을 나누면서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때의 감정은 한 해, 두 해 살아가면서 점차 희석돼 갔고, 부대끼며 살아가다 생기는 생채기들 때문에 방어적으로 되어가는 내 모습을 보며 슬플 때도 있다. 작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항상 마스크를 끼고 은행 업무를 보다가, 이제 마스크를 벗고 은행에 갔더니 그렇게 친절하고 호의적이던 은행직원이 나보고 누구냐며 신분증을 제시하라는 적대적인 모습을 보여서 너무나 어이없어 한 판 거하게 대거리를 한 적이 있었다. 앞으로 계속 거래해야 할 은행 직원임에도 얼굴을 붉혀버려 그 뒤로는 그 은행에서 업무를 보는 일이 매우 껄끄러워졌다. 누가복음 22장에 보면 예수님은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팔려고 입맞춤 하러 왔을 때, 화를 이기지 못하고 종의 귀를 자른 제자를 꾸짖으시며 낫게 하신 자비를 보이셨는데, 나는 고작 나를 몰라봤다고 그렇게 큰 소리로 싸우니 아직 멀어도 한 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한글을 가르치면서 만나는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의 그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볼 때면 이들과 함께 손잡고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싶다는 간절한 기도를 올려드리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거의 지방에서 살았기 때문에 지방 사투리가 좀 있는 편이다. 그래도 나는 꿋꿋이 주민등록증에 등록된 내 주민등록번호를 앞세워 서울 출신임을 강조하며 수업 중에는 최대한 서울말로 수업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도 나를 따라 단어를 읽을 때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첫음절 강세를 학생들이 그대로 따라 읽을 때 속으로 뜨끔하다. 이제 와서 현지어를 배우듯 열정적으로 다시 서울말을 배울 수도 없고 난감할 때가 종종 있다. 학생들에게 이런 돈 주고도 못 배울 ‘희귀한 지방 사투리’를 배울 수 있으니 너희들은 참 복이 많다고 말하지만 사실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수가 없다. 이렇듯 하하 호호 웃으면서 학생들과 재미있게 수업하고 있다. 그들에게 이 수업이 단지 한국 사람과 보내는 즐거운 시간에 그치지 않고, 복된 소식을 전할 기회가 열려 믿는 제자들이 생겨나기를 기도하고 있다.

발렌타인데이라고 수줍게 마카롱을 건네는 그 예쁜 손에 그들을 향해 내미시는 예수님의 손을 꼭 쥐여주는 그런 일꾼이 되고 싶다. 그것이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이자 목적이다. 하루에도 여러 번 무너졌다 세워지는 나의 고백과 현실의 괴리에서, 그리스도의 그 크신 사랑이 조금이라도 더 이 땅에 풀어져 그들에게 나눠지기를 예수님 오심을 예비하는 이때 기도한다.


글 아미나(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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