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때였다. 내가 미얀마에 도착한 것이. 내 인생의 첫 번째 기억은 이렇게 시작한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가 2008년 5월 2일 오후쯤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내가 사고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분명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게 나라인가?’ 2008년 5월 2일 밤, 138,366명을 사망으로 이끈 대형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미얀마를 쳤다. 그 이후로 드문드문 기억나는 장면들을 떠올리자면 수도꼭지를 열면 나오는 실지렁이들, 언제부터인가 가출해서 돌아오지 않는 전기, 그리고 창밖을 보면 땅에 붙어있어야 할 간판들이 날아다니는 광경들이었다. 아마 그때마다 “이게 진정 나라인가?”.라고 다시 생각했을 것이다. 항상 돈이 부족해서 아주 조금 (조금 많이) 싸우던 아빠 엄마를 보고 자란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을 아빠 엄마가 봤다면 이 부분 은 쓰지 말라고 하셨을 것이다) 이런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난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구나!’. 하지만 그 생각은 자라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학교를 열심히 다니기 시작한 풋풋하고 못생긴 중학생 이었던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멍이 들어 오는 내 친구를 보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얘 혹시…… 자기 오빠 소시지를 얼마나 뺏어 먹은 거야?’ 그 의심이 들자 조금 서운해 졌다. 왜 나에게는 소시지를 나눠주지 않은 것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에게 왜 소시지를 나눠주지 않는지에 대해 따지려고 물어봤다. 그 친구는 소시지를 훔치다가 맞 은 게 아니라고 했다. 자기 아버지가 술에 취해 자기를 때렸다고 했다. 난 그걸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술을 마신 다고 자기 금쪽같은 딸을 때릴 수 있을까? 비록 나도 거짓 말을 하거나 친구를 깨물어 궁둥이가 박살 나도록 맞긴 했지만, 다 내가 잘못을 저질렀기에 그렇게 된 게 아니었던가. 왜 내 친구는 아무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 맞지? 그 일을 계기로 세상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참 많다는 걸 깨달았 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 생각을 고치기로 했다. 그래 난 훌륭한 부모님이 있으니 은수저다. 은수저라 여기고 사는 삶은 좀 짜릿했다. 달라진 건 없었지 만, 그냥 은수저인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 은수저도 오래가지 않아 금수저로 바뀌게 됐다. 그 이유는 내 친구, 내 교회, 그리고 앞으로 살고 싶은 내 나라를 찾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으로 2년에 한 번씩 돌아갈 때마다, 당연히 여기가 내 자리라는 듯 반겨주는 친구들을 만나며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지 느끼게 됐다. 영어로 이런 친구들을 “Gem friends”라 고 부른다고 한다. 보석 같은 교회 친구들이 있어서 은수저가 금수저로 바뀌었다. 나에게 금수저를 만들어준 친구들과 같이 가는 교회 수련회는 무척 재미있었다. 하지만 재미있기만 한 수련회는 아니었다. 그날 하나님께서 내 금수저를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주셨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봤을 때 나는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난 그날 너무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이아몬드 수저를 가지고 태어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서 모두에게 다이아몬드 수저를 주셨다. 그 다이아몬드 수저를 버리지 말자.
글 마리아 (마삼열, 김성광 선교사 자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