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예멘 난민 오백여 명이 제주에 입국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너무 반가웠다. 왜냐하면 예멘에서 기독교로 개종하고 가족의 핍박을 피해 한국 땅으로 오게 된 한 난민 형제와 함께 8개월 이상 교제하며 그의 가족과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예멘 난민 형제들을 만나러 제주로 향하던 나의 마음은 마치 새신랑이 그의 신부를 만나러 가는 듯한 설렘으로 가득 찼었는데, 너무나 순수하고 소박한 그들의 모습을 보고 나는 마음을 완전히 빼앗기고 말았다.
첫 식사 대접을 할 때 밥을 먹지 않기에 물으니 식사기도를 먼저 하라고 권하던 이들, 식후에는 내게 차를 접하면서 유창한 영어로 자신들의 고국의 현실과 지금 그들을 반대하는 한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미안해했다. 난민을 반대하는 제주의 어떤 여성들이 이들을 ‘그들만이 살 수 있는 작은 섬에 보내 버리자’고 하는 말을 듣고선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한 목사님은 긍휼함으로 예멘 청년 몇 명을 교회 목회실에 기거하도록 하고 수개월 동안 훌륭하게 돌보아 주셨는데 사회의 시선이 따가우니 가능하면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고, 시내에도 나가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당부했다는 말을 들으며 마음이 참 아팠다. 어느 날 이들과 함께 식당에 갔는데 종업원이 조용히 와서 이들이 어느 나라에서 온 사람이냐고 물었다. 예멘에서 온 사람이라고 하니 깜짝 놀라며 ‘예멘 사람이 아주 무서운 사람인 줄 들었는데 너무 착해 보이고 잘 생겼네요!’라고 했다.
다섯 번에 걸친 제주 예멘 난민 방문 사역 가운데 하나님은 넘치는 은혜를 부어주셨다. 상당수의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주셨고 많은 형제들에게 성경이 전해졌다. 치과 진료와 힐링캠프, 복음 캠프를 통해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고 복음에 응답하는 결실을 얻었다. 건강도, 재정도 없었던 내게 이 사역을 위해 믿음의 발걸음을 떼게 하셨고, 때마다 필요를 채우시고 건강도 주신 하나님은 난민 사역이 현재 이 시점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절실한 것인지 몸소 느끼게 하셨다.
제주도에만 머물러야 했던 출도 제한 조치가 풀리자, 나와 개인적 교분을 가졌던 형제와 복음을 들었던 형제들이 서울로 올라와 직업을 찾을 때까지 나와 함께 있을 수 있겠는지 물어왔다. 너무나 고맙고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거할 곳이 부족했기에 고민이 되었는데 하나님은 이들을 맞이할 수 있는 쉼터를 두 곳이나 한꺼번에 허락해 주셨다. 구제와 선교에 열심을 가진 서울의 한 교회 담임 목사님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번개같이 이들이 거할 필요를 채워주신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제주도에 사역하면서 ‘이 형제와 함께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청년들을 하나님은 거의 다 보내주셨다.
마음의 생각까지 응답해 주시는 멋진 하나님!!!
이들을 위해 집안 물품을 장만하고 집을 단장하는 일은 몸이 피곤하지만 기쁨이 넘치는 일이었다. 아내가 한글을 가르치고 이들을 위해 쇼핑을 하는 일 역시 얼마나 기쁘던지, 마치 제비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어미의 기쁨이랄까…. 이 무렵 몇몇 지인들이 공연티켓을 주었는데 모두 최상급 공연장의 특별석이었다. 청년들과 함께 너무나 행복한 마음으로 한국 고전무용과 현대무용을 관람하고 영화들도 같이 보러 갔다. 쉼터를 제공해 주신 목사님은 명동에서 형제들에게 스테이크를 사 주셨다. 최빈국의 난민 형제들을 하나님은 아주 특별한 손님으로 대우해 주셨다!!
주일마다 우리는 교회에서 예배를 함께 드리고 점심으로 이들이 좋아하는 피자와 치킨을 같이 먹으며 오후에는 말씀 특강을 한다. 십여 년의 아랍권 사역 속에서 감히 하지 못한 일들을 이곳 난민 형제들과 같이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겐 너무나 큰 특권이요 기쁨이다. 하지만 난민 형제들을 섬기면서 안타깝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 또한 참으로 많다. 대부분이 이십대인 이들은 같이 놀아 줄 친구가 절실한데 친구가 되어 주려는 한국 청년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복음을 듣고 믿음 안에 있는 형제들에게는 영적 공격이 특별히 많다. 이들을 특별히 관리하고 양육할 수 있는 재정적 능력과 사역과 중보의 팀이 절실하다.
난민 형제들이 가장 절실히 필요를 느끼는 것은 고국에 있는 가족을 경제적으로 돌보는 것이다. 구직 상황이 너무나 절박하여 언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또 영적 지도를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바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야 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언어가 서툰 이들은 직업을 잘 찾지도 못할뿐더러 직장을 찾아도 회사에서 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 비재하다. 이들을 따뜻하게 돌봐주고 직업 속에서 기술이 자라고 언어가 자라고 신앙이 자랄 수 있도록 인도해 줄 수 있는 기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난민 사역은 전인적 돌봄이 필요하다. 이 땅에 찾아온 낯선 형제들에게 영적 양식뿐 아니라 육적 양식도 잘 채워주는 일에 좀 더 많은 신경과 힘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회개하는 맘으로 해 본다. wec
글 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