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선임이었던 미국 선교사에게서 들었던 한 말이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That is my promised land. (그곳은 바로 나의 언약의 땅이에요)’ 처음에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우리 가정이 들어간 선교지는 엄청 넓은 지역이었고 넓은 지역답게 종족 언어들도 다양했다. 한 가정이 그 지역 전체를 사역 대상으로 삼기에는 무리라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우리는 허락하신 언약의 땅이 어디인지 구해야 했다. 언약의 땅(사역 지역)을 알아야 어떤 방언을 공부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동료 선교사가 했던 고백은 우리의 현실이 되었고, 우리 역시 한 언약의 땅을 품게 되었다.
우리가 섬겼던 그 민족은 현재도 가장 낮은 복음화율을 나타내고 있다. 비록 사역지를 떠나왔지만 여전히 나의 마음속에 그 ‘언약의 땅’을 향한 간절함과 기도는 변함이 없다. ‘나의 언약의 땅(the promised land)’은 결국 내면에 꿈으로만 남게 되는 것인가?’라는 생각 속에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의 여정이 떠올랐다. 히브리서 11장 13절에는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본문에서의 약속은 바로 메시아의 출현이다. 주어진 약속은 있었지만 약속의 실현 그 자체를 그들의 생전에 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약속(언약)이 있었기에 그들은 그 실체를 보기를 간절히 기대했었다. 믿음의 선진들과 같이 선교 여정 속에 주어진 ‘언약의 땅’에 대한 나의 간절함도 그러한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언약의 땅’을 허락하셨다. 그것은 바로 이 땅에서 경험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이다. 해외 선교를 위해 나가는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가서 섬겨야 할 땅을 두고 ‘언약의 땅’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주께서 불러 주신 땅에 들어가 그의 뜻을 전하며 살아가는 삶이 영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가나안에 들어가 사는 이스라엘의 삶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많은 선교사들이 아브라함의 부르심을 통해 선교로 불러 주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던 아브라함처럼(히 11:8) 선교지로 향할 때는 정말 그런 상황에 처하고 그 유사한 경험들을 한다. 가나안은 아브라함에게 언약의 땅이었다. 그러나 성경학자들에 의하면 가나안은 아브라함이 이전에 살았던 지역들(갈대아의 우르와 하란)에 비해 기름지지 못했고 더 척박한 땅이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런 땅을 언약의 땅으로 삼으셨을까?
아브라함은 우리에게 믿음의 조상이다. 창세기 12장 4절은 어떤 이유에서 그가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에 아브라함은 그 언약의 땅에 대해 약간의 소문 정도는 들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문서 자료나 인터넷을 통해 지역 연구조사 같은 것은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가 붙잡았던 것은 오직 말씀이었다. 그 말씀은 방향키와 나침반이 되어 그를 믿음의 조상이 되도록 이끌었던 것이다. 언제나 그랬지만 요즘은 더욱 한 치 앞조차도 가늠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조차 앞날을 예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의 일상을 빼앗겨 버렸다. 이러한 상황으로 주님의 재림에 대한 기대는 더 간절해졌다.
하지만 열방 가운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모른 채 죽어가고 있다. 아직 우리에게는 들어가야 할 언약의 땅이 많이 남아 있다. 바로 지금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 눈에 보이는 것들을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좇아가야 할 때이다. 때로는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지라도 우리의 연구조사가 부족하다 할지라도 그 ‘언약의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 한다. 새로운 전략과 방법들을 모색하고 창의적인 생각으로 선교를 하려고 모두들 참으로 애쓰고 있다.
이 모든 좋은 노력들도 필요하지만 이에 앞서 우리 스스로에게 ‘그 무엇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말씀을 따라가려는 진정한 열망이 있는가?’라고 도전해 보자. 우리 모두가 이 도전에 순종의 걸음을 주저하지 않는 믿음의 자녀로 서기를 소망하며 또 하나의 새로운 가을을 믿음으로 맞이한다.
글 김재형, 강경화 (한국 WEC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