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적인 낯선 만남이 남겨놓은
‘터무늬’를 찾아서

by wecrun

작년 봄, 선교사 훈련생들에게 한국 선교의 초기 역사를 강의한 뒤 서울 정동에 남아 있는 사역 현장과 양화진 선교사 묘역을 함께 방문했다. 첫발을 뗀 곳은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이었다. 이곳은 육영공원으로 시작해 독일 공사관, 근대 최초의 법원인 평리원, 일제강점기의 경성법원, 해방 후 대법원을 거쳐 지금의 미술관에 이르기까지 시대마다 고유한 터무늬를 남겨 왔다.

외형은 달라졌지만, 정동 곳곳에는 알렌, 언더우드, 헤론, 마펫,기포드, 아펜젤러, 스크랜튼 선교사가 처음 머물렀던 집터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우리는 그 작은 집터에서 시작된 정동감리교회와 새문안교회, 그리고 시병원과 보구녀관 같은 초기 의료기관의 터를 차례로 돌아보았다.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언더우드 고아원에서 이어진 경신학교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하나님이 이 땅에서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나누었다. 해설을 듣는 훈련생들의 마음은 자신들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 역사를 향한 기대감으로 가득해졌다.

여정의 마지막 목적지는 양화진 선교사 묘원이었다.

이 땅을 사랑하여 생의 마지막까지 충성했던 선교사들과 그 어린 자녀들의 묘비를 마주하며, 인간의 짧은 생각으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깊이 묵상하게 되었다. 1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선교사는 의도적으로 낯선 땅에 발을 내딛고, 낯선 사람들을 만나 생명의 복음을 증언한다는 점에서 그 정체성은 변함이 없다.

선교사 훈련생들이 선교 역사를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낯선 땅에 도착한 선교사들이 어디에 머물렀고, 어떻게 사람들과 접촉하여 사역의 터전을 일구어 갔는지, 그 ‘터무늬’를 직접 확인하는 과정은 더욱 의미가 있다. 또한 그들이 묻혀있는 묘역을 방문해 삶의 흔적을 마주하는 경험은 훈련생 각자가 자신의 삶과 소명을 깊이 성찰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낯선 만남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들이 남긴 거룩한 터무늬 위에서 우리 또한 은혜의 복음을 전하도록 부르신 하나님께 깊은 영광을 올려드린다. wec

글 조원민(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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