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르 아래의 조용한 혁명
이란 기독교의 폭발적 성장

by wecrun

현재 미국과 이란 사이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2026년, 전 세계의 시선은 호르무즈 해협과 미사일 궤적에 쏠려 있다.
하지만 그 포연 가득한 하늘 아래, 정치적 뉴스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는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바로 이란 내 기독교의 폭발적인 성장이다.

화려했던 팔레비 왕조의 몰락과 이슬람 혁명

이야기의 시작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란은 ‘팔레비 국왕’이 통치하던 화려한 시대였다. 테헤란의 거리에는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들이 활보했고, 서구의 락 음악이 흘러나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나라였다. 하지만 그 화려함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빈부격차는 극심했고, 왕실의 부패와 비밀경찰의 탄압은 시민들의 숨통을 조여왔다.

그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호메이니’이다. 그는 “이 타락한 서구 문화를 몰아내고, 순수한 이슬람 정신으로 돌아가자!”라고 외쳤고, 1979년 민중들은 그를 따라 혁명을 일으켰다. 왕은 쫓겨났고, 이란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신정 국가(종교 지도자가 통치하는 나라)’가 되었다. 혁명 초기, 사람들은 이제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이 올 거라 믿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슬람 법(샤리아)이 국가의 법이 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이제부터 모든 여성은 히잡을 써야 합니다. ” , “ 술 은 절대 안 됩니다.”, “하루 다섯 번 기도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국가는 개인의 사생활부터 생각까지 모든 것을 이슬람이라는 틀 안에 가두려 했다. 게다가 혁명 직후 터진 이란-이라크 전쟁은 8년 동안 수많은 젊은이의 목숨을 앗아갔고, 경제는 바닥을 쳤다.

사람들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종교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왜 우리 삶은 더 팍팍하고 숨 막히는 걸까?”
이 지점에서 이란 사람들의 마음속에 커다란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종교적 권위주의에 대한 환멸, 그리고 국가가 강요하는 신앙에 대한 반감이 싹튼 것이다.

지하교회의 탄생: “우리 집 거실이 교회입니다”

이란 정부는 공식적으로 기독교를 인정하고 있었지만 그건 아주 오래전부터 이란에 살던 소수민족(아르메니아인 등)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대다수인 무슬림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은 ‘배교 죄’에 해당하며, 심하면 사형까지 당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현실의 고통과 전쟁의 공포 속에서 간절히 평화를 갈망하던 사람들은 꿈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비밀리에 성경을 찾아 읽게 되었고, 핍박이 거세질수록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은밀히 모여 신앙을 나누기 시작했다. 바로 ‘가정 교회(House Church)’가 시작된 것이다.

이들은 커다란 십자가가 달린 건물에 모이지 않았다. 그저 친한 친구나 가족끼리 모여 거실에서 차를 마시며 나지막이 노래하고 성경을 읽었다. 목사님도 따로 없었다. 누군가 성경을 읽어주면 그것이 예배가 되었다. 정부가 건물을 폐쇄할 수는 있어도, 수천 개의 가정집 거실을 일일이 감시할 수는 없었다.

이 ‘점조직’ 같은 네트워크가 이란 전역에 세포처럼 퍼져 나갔다. 이란 정부가 미디어를 엄격하게 통제하긴 했지만, 하늘은 막지 못했다. 사람들은 몰래 위성 안테나를 설치해 해외에서 보내오는 페르시아어 기독교 방송을 보기 시작했고 TV 화면 속에서는 이란에서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하나님은 당신을 심판하기만 하는 무서운 분이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는 아버지 같은 분입니다.”

율법과 처벌에 익숙해져 있던 이란인들에게 이 ‘사랑’이라는 메시지는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 같았고 여기에 스마트폰의 보급이 결정타를 날렸다. 종이 성경책을 들고 다니다 걸리면 큰일 나지만, 스마트폰 앱 속에 숨겨진 성경은 누구도 쉽게 찾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공간은 이란 기독교인들에게 거대한 해방구가 되었다.

왜 기독교를 선택했을까?

많은 이란인이 개종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역설적으로 ‘정체성의 회복’이었다. 이란 사람들은 자존심이 매우 강한 민족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랍인이 아닌 ‘페르시아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많은 이가 이슬람을 ‘외부(아랍)에서 들어온 강요된 종교’로 느끼기 시작한 반면, 기독교는 오히려 이슬람 이전의 역사와 연결된 무언가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또한, 국가가 강요하는 ‘공포의 종교’가 아닌, 개인이 스스로 선택한 ‘자유의 종교’를 가짐으로써 체제에 대한 무언의 저항을 표현한 것이기도 했다. 특히 이란 기독교의 성장을 이끄는 주역은 여성들이다.

이슬람 체제하에서 가장 억압받던 여성들이, “남성과 여성이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다”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에서 엄청난 해방감을 느낀 것이다. 실제로 이란 가정 교회의 리더 중 상당수가 여성이라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다.

오늘날 이란은 전 세계에서 기독교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지하 신자’만 100만 명에 육박한다는 분석도 있을 정도이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종교적 통제가 강화되었음에도 오히려 그 압박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사랑의 복음은 “가정 교회” 방식의 지하 교회를 통해 계속해서 퍼져 가고 있다.

전쟁으로 인한 군사적 긴장과 내부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지하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을 지키며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이란의 형제들을 위해 지금이 두 손 모아 기도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이란 전역에 감도는 전쟁의 기운이 걷히고 무고한 생명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평화의 길을 열어 주소서. 지하 교회 성도들을 보호하시고 전쟁의 공포 대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허락하시고 전쟁의 허무함을 느끼는 많은 이란인들이 참된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wec

글 김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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