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인 하나님의 은혜

by wecrun

진심으로 환영해 주고, 이모저모로 섬겨준 동료들의 따뜻한 케어로 큰 덜컹거림 없이 새로운 땅에 부드럽게 잘 착륙했습니다.집을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사 온 지도 한 달이 훌쩍 지나갑니다. 지금은 언어 공부도 시작하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며 새 땅에 심겨지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굳어져 있던 뇌를 굴리며 언어를 배우고, 낯선 곳과 사람들에 적응하는 데 확실히 이전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요구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전에 있었던 곳과 비슷한 점도 많아서 새로운 곳에서 받는 문화충격이 큰 무게로 다가오지 않아 감사합니다! 감당할 만큼 허락하심도, 친히 감당할 힘이 되어 주심도 모두 은혜입니다.

얼마 전에 방문했던 교회에서는 예배 후에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가족 중에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는 자매를 10명 남짓 되는 성도들 모두가 가족처럼 축하해 주고, 세례 후에는 성찬을 함께 나누고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강이나 수영장, 욕조에서 세례를 받는 것은 보았지만, 드럼통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건 처음이었네요. 세상의 눈으로 보면 특별할 것 하나 없는 그 자리가 주님께서 함께 하시고 기뻐하시기에 세상 어떤 곳보다 더 의미 있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자매가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앞으로 있을 영적 공격에도 굳건하게 서기를 한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오늘은 예배드리러 갔더니 교회 마당에서 몇 성도들이 헌혈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전에 양재 사무실 식구들이 가끔 삼삼오오 모여 헌혈하러 가는 모습을 보곤 했는데, 여기서는 정말이지, 의자에 앉아 기계 하나 없이 주먹을 줬다 폈다 하면서 중력에 의해 피를 모으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며칠 전엔 비가 오기를 소원하는 축제가 있었습니다. 준비된 수레 위에 쇠와 철을 쓰지 않고 나무와 노끈만으로 가능한 높이 지어 올려 그 안에 우상을 싣고 해당되는 지역을 돈다고 하는데요. 이 수레가 지나가기 위해서는 전깃줄을 끊기도 하고, 가로막는 장애물이라면 빌딩이라 할지라도 무너져도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저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종교 행사였지만, 전깃줄은 다시 이으면 되고, 무너진 것은 다시 지으면 된다고 하네요. 물론 행사 자체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며 지켜보았지만, 이들이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것을 위해 중요하지 않은 것을 과감히 포기한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엊그제는 나라 전체적으로 지방선거가 있었습니다. 선거일 전에는 사람들이 그룹을 이루어 다니며 구호를 외치고 춤도 추는 선거운동을 합니다. 인상적인 것은 정당과 후보자들의 번호나 이름이 아닌 그림을 보고 투표를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나무, 해, 집, 우산, 자전거, 저울 등의 그림이 각 당의 표시입니다. 글이나 숫자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림을 보고 투표해야 하는 후보당은 무려 총 56개였습니다!

이곳은 버스 종류가 참 많습니다. 빨간 버스, 초록 버스, 흰 버스, 마이크로 버스 등등. 저도 아직 정확히 어떻게 분류가 되는지 모르지만 번호 없는 버스가 다가오면 안내원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목적지가 어딘지 알아채려고 노력합니다. 그래도 모를 때는 제가 가려고 하는 곳을 가는지 물어봅니다. 올라탄 후, 대충 내릴 곳이 가까워 오면 이곳이 그곳인지 확인하고 내리면서 차비를 지불합니다. 안내원은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서 타서 어디에서 내리는 지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내릴 때 내야할 요금을 기가 막히게 잘 말해준답니다. 

늘 그렇듯이 익숙해지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새로 온 사람들에게는 다르고 신기한 것들이 눈에 더 잘 띕니다. 내게 익숙하고 편한 것들만 기억하면 다른 것들이 터무니없게만 여겨지지만, 열린 마음으로 보니 구석구석 너무나 창의적이고, 말이 된다싶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게 하시는 창조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합니다. 주님께서는 현장에서의 삶과 더불어 믿음의 여정에서도 나의 한계 속에 당신을 제한하지 말고, 보이는 것이 아닌 그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님께 시선을 두며 주님의 주님 되심을 인정하며 나아갈 때 제 믿음의 눈을 친히 교정해 가십니다. 오늘도 부르신 곳에서 저의 생각과 마음의 지경을 여러모로 넓히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일상의 곳곳에서 만납니다. 

 

글 배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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