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5일 아주 소박한 묘비를 찍은 사진 한 장을 받았다. 다름 아닌 얼마 전에 하늘나라로 부름을 받은 본 선교회의 한 젊은 선교사님의 묘비 사진이었다. 그의 묘비는 너무 소박해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을 듯해 보였다. 묘비에는 조그마하게 ‘선교! 더 좋은 일상으로의 초대’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남겨두고 떠난 45세의 길지 않은 그의 생은 누가 봐도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그의 깊은 삶의 흔적을 잘 아는 지인들은 더 그럴 것이다. 그는 본 선교회의 문턱을 막 지나고 있었던 선교사였다. 선교지의 땅 한번 밟아보지도 못한 채 그의 생을 마감한 것이다.
선교 훈련을 위해 머나먼 타지에서 2년간 성실히 선교훈련을 마치고 귀국하여 이제 본국에서 선교지로 떠나가기 전 마지막 오리엔테이션을 앞두고 말기 암 진단을 받았다. 짧은 2달여간의 투병 끝에 그는 이 땅과 작별을 고했다. 그렇기에 그의 삶과 죽음은 그냥,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었다. 그가 보여준 헌신과 주님을 향한 사랑은 모든 이에게 귀한 모범이 되었고 그의 죽음은 살아있는 자들에게 많은 것을 남겨 주었다. 누군가는 그의 발인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한국교회에 남은 과업을 맡기시는 예배’라고 소회했다.
그가 남겨 주고 간 것이 무엇일까? 그가 그토록 사랑하여 헌신한 그분에게서 우리는 그 귀한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과업과 성취와 성공을 추구하는 이 세대에 누가 이 죽음을 영광으로 바라볼 수 있겠는가? 천국을 소유한 사람만이, 그와 동일한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이 죽음이 헛되지 않은 놀라운 특권이라고 믿는 자들만이 그가 남겨 두고 간 것을 영광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그의 삶의 모토처럼 <선교는 좋은 일상으로의 초대>라고 우리에게 고백하고 있다. 그는 선교를 일상의 삶 속에 기쁨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좋고 복된 삶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가 말한 그 선교의 깊은 뜻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그가 소망한 것은 주님을 전하는 기쁨으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었을까 상상해 본다. 그 일상이 이 땅이 아니라 주님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 속에서의 초대라면, 그가 진정 소망했던 일상이 그 현장에서라면 정말 주님과 동일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상상해 본다.
없어질 세상의 것을 추구하지 않고 영원한 좋은 일상을 꿈꿨던 한 선교사의 삶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새로운 삶의 목적, 영원한 것에 대한 소망을 안겨준 것 같다. 그를 선교적 영웅으로 만들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삶과 죽음은 다시금 우리를 일깨워 기계적이고 조직적이고 합리적으로 가던 우리의 선교 방향을 더 진실한 모습으로, 더 진지한 태도로 하나님의 본성을 따라가는 순전한 제자로서의 선교로 초대하고 있는 것 같다.
남은 우리,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이제 이 여름을 지나면서 다시금 복음과 십자가를 온 열방으로 가져가는 좋은 일상으로의 초대에 기쁨으로 순종하면서 이 시간을 지나가면 좋겠다.
– 여름의 문턱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