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완벽한 타이밍

by wecrun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사 49:15.

2021년 8월 19일, 나는 선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평생의 잊지 못할 선물을 받았다. 내가 태어난 직후 부모님은 이혼했고, 나는 8살이 될 때까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할머니의 정성과 넘치는 사랑으로 나의 어린 시절은 지금까지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9살 즈음, 아버지의 재혼으로 새어머니, 아버지, 누나와 나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기 시작했다. 낯선 울타리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나는 늘 할머니가 그리웠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속에 내 안에 자라나는 질문이 있었다. ’왜 나의 엄마는 나를 찾지 않지? 나를 사랑하지 않나? 내가 보고 싶지 않나? 나는 이렇게 힘들고 외로운데, 엄마는 잘 지내나?’, ‘엄마의 사랑은 어떤 것일까?’ 라는 질문. 외로운 만큼 공허함은 더욱 커져갔고, 엄마에 대한분노, 억울함, 원망으로 인한 방황… 그러나 동시에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교차했다.

 

하나님의 사랑과 만나다

‘이런 인생, 살아서 뭐 하겠어. 아무도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데…’ 죽으면 그만인 삶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 하나님을 깊이 만났을 때, 나를 안으시며 “내가 너를 기다렸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때가 23살 이었고, 나는 욥기를 통해 회개하였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 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욥 42:5~6) 나는 고스란히 나의 어린 시절을 안은 채로 하나님을 만나고, 나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 안에서 그리고 그분을 통해서 다듬어져 갔다. 이때부터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선교사로 부름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선교지로 오기 전, 기독교 상담을 통해서 나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셨다.
그리고 지난 여름, 셋째 아이 출산을 위해 귀국 한 후, 출산 준비를 하며 틈틈이 상담을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 내 안에 한 가지 소망이 생겼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자!’ 지난 삶을 돌아보니 더 이상은 내 인생에 후회나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마음 한편에 늘 자리하던 한 가지가 떠올랐다. ‘엄마를 찾아보자! 적어도 시도라도 해보자.’ 다음날, 나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주민센터로 갔다. 그리고 생모와의 가족관계 및 생사 여부를 확인했다. 감사하게도 아직 살아계신 걸로 확인되었다. 주소를 받아 곧바로 기차역으로 갔다.

서울에서 엄마가 사는 곳까지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나는 수많은 생각을 했다. 나의 생모, 그녀를 40년간 마음으로 찾고 그렸었다. ‘어떤 모습으로 살까? 엄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를 알아볼까? 왜 찾아오지 않았을까? 결혼은 했을까? 다른 자녀는 있을까? 수많은 질문과 궁금증들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어느덧 나는 40세가 되었고, 어머니는 63세가 되었다. 좀 더 일찍 용기를 냈으면 나는 조금 덜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을 마주했을지도 모른다.

막상 발걸음을 내딛고 나니 긴장과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어느덧 그 집 문 앞에 도착했지만 벨을 누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다시 돌아가면, 나는 후회하며 살아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벨을 눌렀다. 누군가가 문을 벌컥 열고 나왔다. 그분은 엄마의 여동생, 나의 이모였다. 이모는 엄마가 조현병과 파킨슨 치매로 식사와 거동이 어렵고, 사람을 알아보거나,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의연한 척 엄마의 상황을 들었지만, 돌아서서 아내와 통화하며 나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말았다. 더 일찍 엄마를 찾았더라면 건강한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다음날 아침, 떨리는 마음으로 병실에 들어섰다. 엄마를 보는 순간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 순간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놀라운 것은 엄마가 나를 알아 보았고, 내 이름을 불렀다는 것이다. “에벤아! 네가 울면 어떡하니?… 왜 나를 두고 갔냐고 엄마에게 화를 내야지…”라며, 엄마의 잘못으로 너를 힘들게 해서 미안하고, 잘 커줘서 고맙다고 말해 주셨다. 음식도 잘 못먹어서 깡마른 모습, 짧은 머리카락, 입술은 다 갈라져서 엉망인 얼굴이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그립던, 정다운 내 엄마의 얼굴이었다. 40년 만에 처음 본 엄마지만, 원래 함께 지냈던 것처럼 따뜻했다. 평생을 기다린 시간에 비하면 정말 짧은 만남이었지만, 내 마음의 빈 공간은 꽉 채워졌다. 모든 궁금증, 분노, 억울함, 원망이 눈 녹듯이 사라졌고, 몸과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아버지의 완벽한 타이밍

엄마를 만나고 2주 정도 후, 병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그 순간 충격과 동시에 ‘아! 이것은 아버지가 허락하셔서 나를 위해 준비해주신 시간이었구나…’ 깨달아졌다. 그렇게 2주 만에 엄마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못 볼 줄 알았던 아들이 찾아와 그 아들에게 ‘미안하다’ 말할 수 있어서 엄마도 마음의 짐을 덜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고단했던 삶의 끈을 놓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놀라운 것은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나는 오히려 이것이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완벽한 타이밍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인생에 이토록 깊은 애정을 품고 계시다는 사실이, 그분이 나의 아픔을 이해하신다는 사실이, 또한 그분의 완벽한 타이밍과 신실하심이 내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이는 잠잠치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케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 (시30:11-12) 신실하시고 완전하신 아버지, 그 주님을 찬양한다. 이제 훨씬 건강한 어른이 된 나는, 내 안에 주먹을 꽉 쥔 채 울고 있던 어린 나를 받아들이고, 기꺼이 안아 감사함으로 떠나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인생의 제2의 시즌을 위해 이곳에 돌아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소중한 이들과 이 땅을 더욱 힘껏 사랑하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글 백에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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