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국에서 홀로 한국으로 들어온 지 일 년째 되던 2021년 10월의 어느 저녁.
인적이 드문 기도 장소를 찾던 중 갑작스러운 보슬비로 놀이터 정자에서 잠시 비를 피하게 되었다. 주위에 사람이 없어 “하나님~”을 부르며 고개를 든 순간, 가로등 불빛과 빗줄기 사이로 보이는 미끄럼틀이 마음에 쏙 들어와 버렸다. 미끄럼틀의 아름다움에 감탄이 저절로 흘러나왔고, 사진 한장을 담으며 시작한 기도는 놀이터에 대한 것이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봉쇄를 뚫고 눈 수술을 위해 어렵게 떠나온 선교지였고, 군부 쿠데타로 현지에 거주 중인 남편의 생명조차 장담하기 어려웠던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작은 기도에 ‘꿈’을 갖게 하셨다. 한국에서는 흔하지만, 현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놀이 공간! 가난하고 배고프고 학교도 갈 수 없는 아이들이 잠시라도 머물다 갈 수 있는 놀이터와 교회터를 허락하여 주시길 기도했다. 그래서 그 잠깐의 시간들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어 황금 불탑이 하늘을 찌를 듯 수만 개가 세워진 나라에서 교회 땅을 한걸음이라도 밟아볼 수 있기를 소망했다. 이렇게 한 명, 두 명의 아이들이 쉬어가며 위로 받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교회가 있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부모들도 언젠가 쉼을 얻을 수 있으리라.
그렇게 두 달 남짓 기도하던 중, M국의 기독교 소수민족과 군부의 계속된 내전으로 어려움을 겪는 빈곤 아동들과 고아와 학대받는 아이들이 불교사원으로 천명 이상 보내졌다는 소식을 올해 초 듣게 되었다. 소식을 접한 M국의 교회들이 적은 수라도 아이들을 품기 시작했고, 1월 초, 피난 간 곳에서 정착을 시작한 현지 소수민족 목사인 남편 D선교사도 아버님과 함께 7명의 아이들을 맡기로 결정했다. 도착한 아이들은 공용어인 B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다른 언어와 문자를 쓰는 다른 기독교 소수민족이었지만, 아이들과 같은 소수민족인 목사 부부가 돌봄을 자원하였다. 그렇게 2022년은 아이들을 돌보는 것으로 시작하였고, 마땅한 거처도 교회도 없었던 D선교사는 7명이, 9명, 12명….25명으로 늘어나면서 임대 장소도 두 번을 더 옮겨야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과정들을 순적하게 인도하시고 필요들을 채워주셨다.
현 거주지가 산간지역으로 추위에 겨울옷들이 필요해졌고, 겨울옷들을 구해 보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동료 선교사님의 기도편지로 여러 교회에 기도 제목이 전해졌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필요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 만큼, 3주 동안 120여 개가 넘는 의류 상자들이 도착했고, 종류별로 정리해 M국으로 산처럼 쌓였던 축복을 옮기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고아로 자라신 아버님이 전 재산인 Y지역의 집을 두 달 만에 팔수 있게 되어 돌봄을 위한 선교 부지 구입 비용으로 헌금하셨고, 아이들을 위해 불교인들이 20마리의 닭을 놓아두고 갔다. 아이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마음껏 고기를 먹어보았고, 허름한 단벌이 갈아입을 여러 벌 옷이 되었고, 학교 교육을 위한 B어 공부도 시작했다.
놀이터나 교회처럼 어떤 장소가 있어야 시작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일들에 아이들을 먼저 보내주시고, ‘배만 고프지 말게 하자’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손길들을 통해 먹을 것과 입을 것과 거할 장소까지 준비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수많은
기도의 손길들 덕분에 경험한 기적이었다.
예비해 주신 돌봄을 위한 선교 부지에 아버님이 며느리의 꿈과 아이들을 위해 놀이터 공간을 따로 남겨 두셨다고 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역사하심이 참으로 놀랍고 은혜롭지 않은가! 작은 소망의 기도를 통해 마음의 지경을 먼저 넓혀 주시고
꿈꾸게 하시는 하나님께 기쁨으로 감사를 올려드린다.
글 세라(I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