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한참이던 2021년 초, 나는 2차 백신 접종을 마치고 캄보디아에서 2주간의 격리 후에야 선교지의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격리 후 처음 밖을 나갈 때, 동남아시아의 습한 기운을 생각하며 발을 내디뎠는데 오히려 건조한 느낌이 들어 신기했다. 이제는 이 땅이 우기 때에도 습하기 보다는 건조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이곳에 와서 적응이 가장 힘들었던 건 날씨와 소음이었다. 매일같이 33도를 넘는 더위 속에서 걸으면 5분도 되지 않아 온몸이 땀으로 젖고, 땀이 뚝뚝 떨어진다. 그런데도 현지인들은 덥다고 긴 팔을 입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또, 오토바이가 많아서 소음은 얼마나 심한지 집에서 잘 때도 거리 한복판에 누워 자는 것 같았다. 이곳 사람들은 더운 날씨 때문인지 잘 걸어 다니지를 않고 대부분 오토바이나 ‘툭툭이’라는 3인용 오토바이를 앱으로 불러서 이동한다. 그런데 나는 오토바이를 운전해 본 적도 없고 ‘툭툭이’는 생각보다 비싸서 먼 길을 가지 않는 한 동네 주변은 걸어 다녔다. 그러니 더위도 소음도 고스란히 느껴져 더 힘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일년이 지난 지금 날씨도 소음도 익숙해져서 이제는 30도가 넘는 날씨에는 피부가 따가워 현지인들처럼 긴 팔을 입어줘야 한다는 것을 안다.
나는 현재 언어와 문화를 배우며 지내고 있다. 언어 수업에서 지금의 소중한 현지 친구를 만났다. 이 친구는 일대일 수업에서 만난 언어선생님인데 그녀는 다른 외국인들(대부분 선교사)을 가르치면서 이미 하나님에 대해 많이 들은 것 같았고 심지어 밥 먹을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밥을 먹어서 처음에는 신앙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을 믿는지 물어보니 아니라고 하기에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더는 물어보지 못했다. 내 현지어가 부족하기도 했지만 그 짧은 대답에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요구받았었는지 느껴져서 나까지 한마디 더 보태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변화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변화를 요구받는 걸 싫어한다.”라는 글을 읽었던 것이 생각나면서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에는 철저하게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하다는 마음도 들었다.
몇 개월 후, 나는 그녀에게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지 물어보았는데 조금은 믿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들려달라고 하자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몇 달 동안 밤마다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리는 일이 많았는데, 심하게 가위가 눌린 어느 날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신이란 신에게 도와 달라고 했지만 계속 가위가 풀리지 않던 때에 마지막으로 생각난 신이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도움을 청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니 가위눌린 것이 사라지고 그 이후로 악몽도 꾸지 않고 가위도 눌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일로 하나님이 진짜 살아 계신 것 같아 그렇게 말한 것이란다.
나는 이 자매 가운데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확신했지만 그녀에게 믿음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나의 신앙의 경험을 나누었고 캄보디아의 기독교 문화에 대하여 이야기해달라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하여 더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한두 달 후 다시 예수님을 믿는 것에 대해 질문 했을 때, 지금은 믿는다 하는 대답에 너무 기뻤다. 그 대답은 그동안 본국에 기도편지를 쓸 때마다 그녀를 위해 기도 요청 했던 것에 응답이기도 하였다. 그 후 그녀와 영접기도를 같이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디데이를 정하고 주변에 상황을 알려 중보 요청을 하며 현지어로 영접기도문을 준비하는데 마음이 떨렸다.
드디어 디데이, 영접기도에 대해 말하니 그녀는 이미 영접기도를 해봤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녀가 다시 그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마음 속으로 기도하는데 그 순간 성령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언어 선생님인 그녀에게 나의 부족한 발음을 핑계 삼아 영접기도 녹음을 부탁했다. 내 부탁에 그녀는 아주 기쁘게 기도문을 3번이나 읽으며 나를 위해 녹음을 해 주었다. 난 그것이 그녀의 진정한 신앙 고백이라는 확신과 하나님께서도 그녀의 기도를 받길 원하셨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 날 이후 우리는 더 많은 일상의 이야기와 신앙에 대해 나누며 좋은 교제를 나누고 있다. 이곳에서 언어를 배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 순간에 하나님께서는이 사건을 통해 여전히 일하시고 계심을 보여 주셨다. 이들에게 신학적인 복음을 전하는 것도 선교이지만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현지인들의 친구가 되는 것도 선교라는 것을 알게 해 주셨다. 선교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내가 이곳에서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라고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신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곳에 믿는 자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그들과 함께 신앙의 길을 걸어 갈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글 한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