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길을 따라오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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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을 지나면서 AZ국을 떠나 T국으로 사역지를 옮기게 되었다. 우리가 고른 세간살이로 집을 채우며 황혼 신혼처럼 설레기도 했다. 하지만 외국인 거주법이 바뀌면서 거주증이 거절되었고, 우리는 순식간에 폭풍우 속 제자들처럼 혼란에 빠졌다.
“주님, 이게 뭐죠? 이제 막 가구와 가전을 샀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새로 산 살림살이는 사설 창고에 맡기고3개월 뒤를 기약하며
떠나야 했다. 이후 신규 거주증 발급은 불가능했고, 사역자들이 추방되거나 경고 코드를 받았다는 소식만 들려왔다.
그 후, 우리 비자는 또 거절되었고 T국에서 걸린 코로나 후유증으로 생긴 천식을 다스리며,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주님, 한 말씀만 해주세요!” 적어도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인을 받고 싶었다. 주인 없이 표류하는 배에 탄 듯한 두려움도 있었다.
오랜 침묵 끝, 주님은 단 한말씀만 하셨다. “나를 따라와라.” 충분했다. 포기하지 않고 버티며 견뎌내면 된다는 확신을주셨다.
신설된 G국 바투미 팀의 초대로 현장을 방문했을 때 가슴이 뛰었다. T국에서 언어와 문화를 잘 준비한 뒤 합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주님의 시간표는 달랐다. “이곳 바투미에 숨겨진 보물이 많으니 이곳으로 오라.”는 꿈으로 응답을 받고,
결국 바투미에 닻을 내리게 되었다.
숨겨진 보물 – 바투미
보물찾기가 시작됐다. 사역 청사진을 그려보았지만, G국어는 모르고 T국어도 부족했기에 쉽지 않았다.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섬기며 주님의 인도를 기다렸다. 바투미 팀은 따뜻한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사역자 커뮤니티 멤버들은 국적이나 소속 단체를 넘어서 서로의 사역과 필요를 적극적으로 돕고 참여하며 함께 웃고 기뻐했다.
매주 팀 모임 때는 집을 오픈하고 모두가 좋아하는 한국 음식을 나누며 행복을 나눴다.
매달 있는 커뮤니티 모임에서도 한식으로 타 단체 사람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했다. 이렇게 밥상 교제는 언제나 큰 힘이 되었다.
화해 협력 그리고 쉼 – 바투미구원교회
바투미구원교회는 T국에서 추방된 사역자들에 의해 세워진 T국어 교회이다.
다양한 단체와 국적의 사역자들이 함께 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성도의 수는 조금씩 늘고 있다.
지속적인 복음 전도의 열매가 있어 감사하다. 올해부터는 바투미 지역의 T국인 커뮤니티 베이스 역할도 하고 있다.
신앙은 없지만, 교회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함께 교제하는 바투미 거주 T국인들이 늘어나, 예전 한인 이민교회와 유사한 분위기다.
올여름에는 많은 사역자들이 이동하면서 섬김의 빈자리들이 생겼다.
그러나 부름 받은 땅에서 필요한 곳을 찾아 섬기는 경험은 또 다른 은혜와 기쁨임을 배우고 있다.
바투미 사역의 축소판 – 바투미은혜학교
이어 주님께서 인도하신 곳은 바투미 은혜학교다. 이 학교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구걸로 살아가는 AZ국 출신 쿠르드족
집시 아이들을 섬기는 곳으로, 호주 사역자 가정을 중심으로 여러 단체 사역자들이 동역하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G국어, T국어, K국어로 가르치고, 교사와 스텝들은 영어, 러시아어, T국어로 소통한다.
이 작은 학교에서 무려 5개 국어가 사용된다. 바투미 도시의 축소판이다. 이 모든 언어에 능통하긴 어렵지만,
높은 언어 장벽은 협력과 팀워크로 극복하고 있다. 어느 더운 여름날, 길가에서 산만한 모습으로 동냥하던 흑진주 같은
작은 소녀를 보았다. 멜렉이었다. 놀라며 이름을 부르자 배시시 웃으며 다가오던 그 얼굴을 잊을 수 없다.
그날부터 멜렉과 오빠 므랏을 특별히 마음에 품고, 만날 때마다 “너는 존귀한 존재야”라며 우리의 사랑을 표현했다.
처음에는 움찔하고 몸을 빼던 녀석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달려와 안기고 매달리며 업어 달라고 한다.
사랑의 열매가 아이들의 성품과 얼굴에 서서히 맺히고 있다. 올여름부터 쿠르드 가정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떠나온 나라 말을 하고, AZ국에서 살다 왔다고 하니 쉽게 친밀한 관계로 들어갔다.
이제 우리는 그들의 부모가 변화되고 가정에서 천국을 맛보는 역사가 일어나길 기대하며 꿈꾸고 있다.
부족하지만 주어진 길을 따라온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주님께서 우리의 2악장을 얼마나 멋지게 완성하실지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하다. wec
글 주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