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을 찾아가다

by wecrun

학생,방구하나?”
어느 날 길을 걸어가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 뒤에서 말을 걸었다. 분명 내 주변에 아무도 없었는데…… 뒤를 돌아보니 한 아주머니가 길 옆 회색 빌라에서 나오면서 또다시 물었다.
“학생, 방구하나?”
순간 내 머릿속은 하얘지고 얼굴은 빨개졌다. 아주머니와 나 사이에 알 수 없는 정적이 잠시 흐른 뒤 나는 아무 대답도 못한 채 고개를 떨구고 도망치듯 빨리 걸어가 버렸다.
‘아니, 방구(방귀)가 그렇게 나쁜 건가? 길에서는 방구도 뀌면 안 되나? 내 방구 냄새를 맡기라도 하셨나?’

그 당시 우리 가족은 수 년간의 중국 생활을 마무리 짓고 잠시 한국에 살고 있었다.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고 천안 세종글로벌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태어난 지 8개월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고생을 많이 해서였을까? 나는 중학생의 나이에 이미 대학생처럼 보였나 보다. 그 아주머니는 대학가에서 대학생들에게 방을 임대하는 사람이었고 나를 대학생으로 잘못 알고 “학생, 방 구하나?”라고 그냥 물었던 것이다.

한편 그날 점심을 잘 못 먹어서인지 속이 부글부글하던 차에 주위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마음껏 방귀를 뀌었던 나는 갑자기 나타난 아주머니의 이상야릇한 질문에 순간 당황했던 것이다. 나중에서야 겨우 이 상황을 파악하고 난 뒤 한바탕 웃기는 했지만, 겉늙어 보이는 외모와 어눌한 한국어 실력 등등 때문에 나의 마음 한구석엔 왠지 모를 씁쓸함이 있었다. 그 일 후, 우리 가족은 새로운 땅 N국으로 갔고 그곳 분지의 따가운 햇볕 아래에서 오염된 공기를 마시며 나는 중고등학교 5년의 시간을 보냈다.

고등학교 졸업식 때 나의 졸업사진을 보고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신국이는 아주 성숙해 보여. 고등학교 졸업식이 아니라 대학 학위 수여식 사진 같아.”
‘나는 언제쯤이면 제 나이로 보일 수 있을까?

올해 6월 말, 대학 진학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올 때 네팔 공항에서 나는 나의 여권을 보며 생각했다. 대한민국 여권이 나를 한국인으로 만들어 주는 건 아닐 거라고…… ‘약 14년을 다른 나라에서 살고 한국에서 통틀어 겨우 5년을 살았는데 내가 정말 한국인일까?’ 한국 친구들보다 오히려 외국 친구들과 자유롭게 어울리고 이야기하는 게 더 편하고 즐거운 나였다. 하지만 지금 나는 분명 한국인으로 한국에 살고 있다. 그리고 나의 정체성을 천천히 찾아나가고 있다. 나와 같은 선교사 자녀들을 만나고, 한국 음식을 먹고, 함께 제주도를 여행할 때, 나는 마치 집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뿌리에 대한 확신을 이곳의 삶을 통해서 한 걸음씩 찾아나가고 있다. wec

글 차신국 (차모세, 박하나 선교사 자녀)

You may also li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