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오는 길

by wecrun
선교일상의-에피소드

벼르고 벼르던 한국 방문을 앞두고 거주증이 나오지 않아서 출국 날짜를 확정 지을 수가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얼마 전에 신청하여 다 받았다고 하는데 경찰은 우리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결국 6월에 한국에 가야 한다며 확고한 태도를 보이자 경찰은 다른 말을 했다. 거주증 문제는 공항 경찰서에서 해결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행기 표를 끊고 남편은 한국으로 출발하기 전날 공항 경찰서를 찾아갔다. 딸과 나는 비자가 만료되어 이미 불법체류자가 된 상태라서 벌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그간의 일들을 설명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결국 출국 날 공항 경찰국에서 벌금을 내려는데 경찰은 딸의 벌금만 내라고 했다. 어제 오후 내 영주권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건 또 무슨 황당한 말인가? 작년에 영주권을 신청할 때만 하더라도 내 노동비자 연장이 확인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어떻게 영주권이 나왔다는 건지. 우리는 이 놀라운 사실에 벌금 내는 창구 앞에서 기뻐하며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뜻밖에 영주권을 받고 너무나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출입국 경찰 앞에 서서 여권을 내밀었다.

그런데 컴퓨터에서 남편의 이름 확인하던 경찰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지더니 얼마 뒤에 다른 공항 경찰이 나타나 다짜고짜 남편을 연행해서 공항 안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무슨 일이냐며 소리를 질러 보았지만 출입
국 경찰은 원하면 딸과 나는 출국해도 좋다는 답을 하고 사라졌다. 가슴은 이미 내려앉았고 온갖 상상이 뇌를 스쳐갔다. 그나마 다행히 핸드폰으로 남편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남편은 공항 유치장에 갇혔고 곧 판사가 오면 즉심에 넘겨진다고 했다. 비행기는 이제 1시간 50분 뒤면 떠나는데 남편이 즉심에 넘겨진다니. “오 주여!”라는 말만 계속 반복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주님이 이 상황에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급한 기도를 올렸다. 얼마 후, “엄마 배고파요. 과자 먹어도 돼요?”라는 딸의 말에 ‘얘가 지금 정상인가? 함께 간절히 기도를 해도 시원찮을 판에 아빠가 지금 유치장에 갇혔고 우리가 지금 어떤 상황인데 과자가 넘어가는가?’ 참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딸을 쳐다보자 “엄마, 우리 이런 일을 한두 번 당한 것도 아닌데 하나님께 기도드렸으니 들어주실 거고 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과자를 먹으면서 기다려요”라고 했다. 딸은 나름 의연한 태도로 믿음을 보이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믿음이 적은 엄마는 이런 딸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얼마 후에 남편과 다시 통화하면서 알게 된 것은 문화재청 수배자로 긴급 체포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판사가 추리닝 바람으로 왔는데 즉심을 시작한다고 했다. 도대체 왜 문화재청 수배자가 되었는지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즉심이 이루어지는 시간이 내게는 밤이 몇 번을 지나가는 듯 느껴졌다. 판사는 변호사를 선정할 수 있다고 했으나 새벽 1시가 다 된 시간에 와 줄 변호사도 없거니와 토요일 새벽이니 변호사를 기다리다가는 며칠 동안 유치장에 갇혀 있어야 하고 한국행 비행기를 놓칠게 분명했다. 남편은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고 스스로 자신을 변호하겠다고 했다. 판사는 수배자로 잡혀오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남편에게 변호할 기회를 주었다. 사건인즉 수년 전 문화재 건물로 등록된 문화센터에서 일어난 소송이 원인이었다. 1층 건물주가 전체 건물주들에게 소송을 걸고 거기에 시청과 문화재청까지 연루되어 소송이 복잡하게 된 것이다. 문화센터가 이 건물의 소송에 휘말리고 결국 장소 사용이 불가해져 우리는 새로운 길로 사역의 방향을 정하게 된 오래전 스토리다. 그런데 우리가 그곳을 떠난 이후 문화재청이 소송을 열고 전체 건물주들은 진술을 하면서 우리에겐 아무런 연락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문제가 마치 우리에게 있는 것처럼 사건을 덮으려 한 것이다. 문화재청에서는 우리와 연락이 되지 않자 남편을 수배자로 경찰에 이름을 넘겼던 것이다. 그러한 일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모처럼 고국으로 가는 공항에서 체포가 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남편에게 지혜를 주셔서 판사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셨다고 한다. 이 사건은 1층 건물주와 다른 건물주 간의 다툼에서 일어났고 우리와 관계없는 일이라고 자초지종을 판사에게 설명했고, 판사는 모든 사건의 진술을 들은 후 무죄판결을 내렸다.

공항 법정에서 택시를 타고 허겁지겁 달려와서 가까스로 비행기를 탈수 있다는 기쁨이 충만한 그 순간 경찰서에 컴퓨터 가방을 두고 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남편은 경찰서로 가서 가방을 찾아 뒤따라 오기로 하고 우리는 게이트로 달려가서 남편이 올 때까지 비행기 출발을 지연시키기 위해 뛰는지 나는지 모르는 속도로 게이트를 향해 달려갔다. 우리 처지를 딱하게 여긴 공항 직원은 파일럿과 통신을 했고, 10분 정도는 기다려 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어떻게든 비행기를 타보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 눈앞에서 탑승구는 닫혔고 우리는 땀 범벅이 된 채 한동안 문 닫힌 탑승구를 쳐다보고 서있었다.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이번에는 공항에서 나갈 수 없단다. 딸이 불법체류자로 벌금을 냈기 때문에 재 입국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화요일 새벽까지 이틀을 꼬박 공항에서 지내야 한다는 말인데 “오 주여!”가 저절로 입에서 나왔다. 경찰에게 모든 사정을 또다시 얘기하고, 경찰은 다른 높은 경찰에게 얘기하고, 결국 딸이 미성년자이고 부모가 함께 있으니 공항을 떠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려줬다.

공항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밤이 지나고 태양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해 더 이상 가로등이 필요 없는 시간이 됐었다. 지난밤 마치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사방이 조용했다. 참 희한했다. 우리는 비행기를 놓쳤다는 속상함보다는 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안도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감사함으로 주일 예배를 드렸다. 감사할 제목이 주저리주저리 나왔다. 여느 때처럼 어둠은 지나고 새로운 날이 찾아왔고 화요일 새벽이 오기 전에 우리는 월요일 아침 일찍 공항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혹시 모를 새로운 해프닝을 준비하는데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택배가 배달되었다. 나의 영주권이었다. 금요일 오후에 발행되어 월요일 아침에 도착한 것이다. 1년 동안 소식이 없었던 일이 며칠 만에 해결된 것이다. 우리가 떠나고 나서 배달이 됐다면 이 중요한 거주증을 찾기 위해 나중에 이곳저곳을 다녀야 했을 것이다.

기분 좋게 다시 공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출입국 경찰 앞에 여권 심사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그날 우리 사건을 지켜보던 경찰이 우리 여권을 심사했다. 도장을 꽝꽝 찍어주면서 애 많이 썼다고 말을 건넸다. 그러고보니 지난 며칠간 급히 뛰어다니며 몸도 마음도 참 애를 쓴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우리는 행복했다. 주님께서 판사 앞에서 할 말을 다 가르쳐 주셔서 유치장에서 오늘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가장 완벽한 시간에 영주권이 발급이 되어서 불법체류 기록으로 재입국이 거부되는 위험에서 벗어났다. 딸이 한 말처럼 우리가 이런 일 한두 번 당한 것도 아니다. 사랑하는 주님께서 이번에도 모든 상황을 선하게 다스리셨다. 우리는 딸이 그동안 리스트에 적어둔 맛있는 한국 음식을 곧 먹게 될 것이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닌가! 

글 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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