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오예가 6개월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이곳에 왔다. 이곳 사람들은 아이들을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데 첫째 오예가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버스를 타는 날이면 버스를 탄 사람들에게 한 바퀴 휙 돌려지고, 내릴 때가 되어서야 우리에게 반납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덕분에 세상 사는 법을 빨리 깨달은 오예는 공원에 가는 날이면 스스로 공원을 돌며 사람들과 사진을 찍어주고 간식도 공짜로 얻어먹는 기술을 시전한다. 덕분에 현지인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이 생기기는 하나, 때때로 엑스트라 소셜한(너무 사교적인) 오예가 위험에 처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루는 오예가 술 취한 노숙자와 함께 놀이터에서 노는 것을 보았는데…… 여하튼 둘이 즐겁게 잘 놀긴 했지만…… 이런 오예를 위해서라도 동생이 얼른 생겼으면 하고 기도하며 둘째를 계획했다. 둘째를 임신하고 초기에 유산기가 있어 약을 먹으며 우리에게 주신 생명을 보호해주시기를 기도했고, 많은 분들이 중보기도로 함께 해주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곧 임신 안정기에 들어섰다.
정기검진과 출산까지 할 현지 병원을 고르는 일은 이곳에 온 지 1년도 안 된 우리에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에 오자마자 오직이 집 근처의 병원 두 곳에서 신세를 지는 바람에 그 두 병원은 꼭 피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 덕에 큰 어려움 없이 병원을 정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첫 검진을 받고 회계팀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병원 자체 할인을 받고, 출산까지 그 병원에서 마칠 수 있었다. 이번 일에도 오예가 매우 힘써 주었는데, 의사들과 간호사들을 비롯한 병원 사람들 모두의 휴대폰에는 오예의 사진이 한 장 이상씩은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오예의 6개월 전 사진을 보여주며 아이가 많이 컸다고 비교해 줄 정도였다. 오예가 병원에 가면 마스코트가 왔다고 반가워하며 의사와 간호사들 중에는 환자 진료 중에도 잠시 멈추고 오예와 사진을 찍고 놀아주곤 했다.
사실 둘째 기쁨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오예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어 기쁨이를 임신한 중에는 많이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 신기하게도 둘째 오기쁨의 예정일은 첫째 오예의 생일이었다. 첫째를 수술로 낳았던 이유로 둘째도 수술을 해야 했기 때문에 생일을 한 날에 맞추고 싶은 아빠의 이기적인 욕심도 있었지만, 주변의 응원에 힘입어 둘째는 형보다 일주일 빠른 혼자만의 생일날을 가질 수 있었다. 첫째와 둘째의 성별이 같고 태어난 달도 같아 우리는 둘째를 ‘이코노믹 베이비(경제적인 아기)’라 별명을 지어주었다.
둘째를 낳던 날, 수술실 안에서의 풍경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코렐리(한국인) 아이는 처음 받는다며 들뜬 간호사들과 의사들, 족히 열 명 이상의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출산도우미 겸 구경꾼으로 우리를 축하해주었다. 한청년 의료진은 출산 시작부터 끝까지 80여 장의 사진을 찍어 나에게 전달해주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후에 사진을 보니, 모든 수술 과정도 다 찍혀 있었는데 배를 칼로 째어 위로 열어놓은 날것 그대로의 사진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것을 지우기도 뭐 하고…… 어찌해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휴대폰에 담겨있다.
문화 차이일까? 한국에서는 첫째를 수술로 출산하고 4박 5일의 병원 신세를 졌는데, 이곳은 수술을 하고 바로 다음날 퇴원을 해야 했다. 임하리는 수술 전 안내를 받은 후부터 계속 걱정을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이기 때문에 집으로 올라가는 수십 개의 계단이 출산 과정보다 더 두렵다고 했다. 한국의 병원에서 3일 동안 이루어졌던 과정들이 이곳에서는 반나절 안에 이루어졌다. 수술 후 모든 링거 바늘과 소변 줄을 빼는데 몇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수술 당일 오후에는 걷기 연습을 시작했다. 이곳에 대부분의 것이 다 느린데 퇴원만은 되게 빨리 시킨다고 병원에서 실소를 짓던 오직의 얼굴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수술실에서 나오자마자 제공된 수프와 물 덕에 임하리는 힘을 얻어 다음날 퇴원을 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침대 위에서 아픈 몸을 비틀며 부지런히 운동과 평지를 걷는 연습을 했다. 다음날 아침 계단을 오를 수 있는지 연습을 해 보고 안 되면 퇴원을 하루 미뤄보자며 계단 앞에선 임하리는 너무 비장한 모습이었다. 출산 후 오르는 첫 계단이 신혼여행으로 갔던 에베레스트산만큼 높게 느껴졌으리…… 그때의 연습 덕인지 계단을 쑥쑥 걸어서 임하리는 별 탈 없이 퇴원을 할 수 있었다.
출산 당일 아침, 임하리가 수술실로 향하는 동안 오직은 밖에 서서 출산을 위해, 그리고 태어날 둘째를 통하여 이땅 가운데서 아버지께서 영광 받으시기를 기도하며 문밖을 서성였다. 둘째의 이름은 이곳 말로는 ‘Rejoice! (기뻐하라!)’는 뜻이고, 한국어로는 ‘세상의 빛’이란 뜻이다. 둘째의 임신 기간 동안 우리의 기쁨을 빼앗으려는 많은 영적인 공격들 가운데, 우리에게 기쁨을 부어 주시는 하나님을 소망하며 예명을 기쁨이로 했던 것이 이름으로까지 이어졌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기쁨이가 되기를 바라며! 또한, 세상의 빛으로 오신 주님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가기를 축복하며!
글 오직, 임하리 (오예, 오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