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까지 한국에서 자랐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기억은 이사하는 날이었다. 그마저 기억이 흐릿하지만 생생하게 기억나는 건 이사하는 날 내가 비몽사몽 깨었을 때 이미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도착해서 집 창문에 설치한 사다리로 짐을 실어 나가는 모습이다. 그날의 나에겐 이사가 실감이 안났다. 여태껏 자라왔던 나의 동네 복정동, 익숙한 나의 복정동 집, 매일 앞을 지나가던 선한목자교회, 항상 집 앞 놀이터에서 함께 놀던 친구들까지, 내 삶에 정착된 이 모든 것들이 그날의 이사로 인해 작별 해야 된다는 것도 실감이 안 났다.나의 유년기를 보냈던 복정동의 나의 집은 이제 남의 집이 되었고, 이 시점 이후로 나는 이사한 곳에 정착할 때쯤이면 항상 다른 곳으로 옮겨 다니는 삶에 익숙해져 갔다.
한국을 떠나 캐나다 중부 마니토바주 안에 위치한 오토번이라는 시골로 집을 옮겼고 그곳은 낯선 땅 그 자체였다. 익숙했던 한국과는 공기도 전혀 달랐다. 캐나다에서의 생활에 적응하기 전, 유일하게 숨통이 트였던 곳은 가족과 함께 살던 집이었다. 그 자그마했던 집도 한국에서의 집에 비하면 부족한 게 많았지만 새로운 집에서의 생활은 재미있고 행복한 일들로 넘쳤다. 4년 후, 캐나다에 마음이 정착했을 때쯤 나는 또 다른 나라, 다른 곳으로 집을 옮겨야 했고 다시 한번 실감 나지 않는 이상한 감정들이 느껴졌다.
그 후, 영국, 한국, 이집트 등을 반복해서 몇 번을 이사하면서 느꼈던 것은 나와 나의 가정이 이사하게 될 새로운 곳에는 항상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최고 좋은 길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가족과 함께 교회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고 있다. 나의 다음 집, 다다음 집이 어디가 될지 모르는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고 있지만 이제는 다음에 이동할 장소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보다는 기대함이 크다. 정착되지 않고 항상 굴러가던 나의 집으로 인해 혼란스러울 때도, 불안정할 때도 많았지만 나는 이제 새로운 집에서 있을 일들을 기대하며 나아간다.
글 솜씨 (다니엘, 드보라 선교사의 자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