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온 지도 어느덧 10개월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복작복작 초기 정착의 시간을 지나, 현재 우리는 이곳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일에 열정을 쏟고 있다. 성도들과 팀원들을 알아가며 누리는 기쁨, 그리고 그들의 관심과 격려 속에서 우리 가족이 이 땅에 잘 뿌리내리도록 돌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낀다. 그 은혜에 감사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입국 비자를 기다리며 앞이 보이지 않는 큰 산처럼 느껴졌던 시간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러나 그 시간마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신 과정이었음을 고백하게 된다. 여호와 이레(창 22:1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언약의 말씀을 믿고 순종의 걸음을 내디딜 때, 그 약속이 일상에서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음을 경험한다.
그런데 이곳에 오기 전, 타이베이로 이주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딱 한 가지 염려가 있었다. 우기 때 비가 정말 자주 내린다는 것이었다. 리더 선생님도 우기 때 우산은 가방에 항상 휴대해야 한다고 하셨다. 비가 많이 오든 적게 오든 일주일 내내 내리기도 하고, 해가 잠시 나왔다가 구름이 바다처럼 몰려와 금세 빗줄기를 쏟아내기도 한다. 덕분에 많은 추억이 생겼는데, 빗길 위에서 자녀와 함께 겪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다섯 살 예안이는 집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떨어진 현지 교회 유치원에 다닌다. 오전부터 7시간 내내 중국어에 노출되어 친구들과 선생님들 사이에서 지내는 아이에게 하원 시간은 더없이 기쁜 시간이다. 피곤한 탓인지, 차멀미 때문인지 버스에 오르면 내 무릎에 누워 재잘재잘 노래를 부르다 이내 잠이 들곤 한다.
비 내리던 어느 오후, 언어 수업을 마치고 예안이가 좋아하는 망고 스무디를 사 들고 서둘러 유치원으로 향했다. 아이를 만나 반갑게 이야기 나누며 빗길을 걷는데, 눈앞에 커다란 무언가가 보였다.
“아빠! 저 달팽이 좀 보세요, 엄청 커요!”
예안이는 달팽이를 보고 무척 신이 났다. 한국에서는 본 적 없는 크기의 달팽이였다. 예안이는 한참을 바라보다 말했다.
“아빠, 이 달팽이는 비가 와도 크고 튼튼한 집에 살아서 끄떡없겠죠? 하나님은 신기한 친구들을 많이 만드셨네요!”
“그러네. 화창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비가 오면 비로소 보이기도 하는구나.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은 참 신기하다. 그렇지?”
길 위의 달팽이 한 마리 덕분에 찬양 하나가 떠올랐다.
조금 느린 듯해도 기다려 주겠니
조금 더딘 듯해도 믿어줄 수 있니
네가 가는 그 길 절대 헛되지 않으니
나와 함께 가자
(찬양 ‘하나님의 열심’ 중 일부)
비 내리는 거리에서 예안이와 나의 마음까지도 따뜻하게 감싸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의 영혼을 부요하게 하셨다. “화창한 지난날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일상의 은혜가 풍파와 빗줄기 같은 불확실성 속에서 비로소 선명해진단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배우고, 평안 가운데 그리스도의 풍요로 채워지게 될 거야. 그러니 걱정하지말고 나와 함께 가자!” 상황과 형편에 흔들리지 않고 믿음의 눈으로 볼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우리를 겸손케 하고 주님께서 예비하신 것들을 감사로 누리게 한다. 여호와 이레의 은혜를 이 땅의 사람들과 나누며 살아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wec
글 곽지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