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는 위대하시고 마지막 선지자는 무함마드이다’ 성소피아 동서남북에 세운 미나렛(첨탑)의 확성 기에서 울려 퍼지는 아잔이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들려왔다. 이날은 AD 537년에 세워진 성소피아 성당이 지난 역사 속에 모스크로, 박물관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다시 모스크로 건물의 용도가 바뀌는 날이었다. 오늘은 좀 일찌감치 하던 일을 정리하고 주영이와 함께 성소피아로 향했다. 주영이는 대학에서 역사와 정치를 공부하고 있는 아이라 나만큼이나 성소피아 성당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변화에 관심이 많고 대학 신문사로부터 성소피아와 관련된 글을 얼마 전 부탁받았기 때문에 현장에서 직접 그 분 위기를 느끼고 싶어 했다.
성소피아 건물이 있는 술탄 아흐메드 광장에는 이스탄불 시민들뿐만 아니라 유럽 각지에서, 터키 전 역에서 몰려든 수많은 무슬림들로 이미 가득 차 있었다. 이 역사적인 현장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무슬림들은 성소피아 건물 안으로 몰려들어 ‘알라는 위대하시다’는 함성을 외쳤다. 이 함성은 아마도 오늘 밤 내내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다. 귓가에 웅웅거리며 들리는 이들의 외마디 함성에 갑자기 마음이 답답하고 뭔가 알지 못하는 슬픔이 몰려들었다.
이스탄불의 돌과 흙은 금이라는 말이 생겨난 이유가 성소피아 안을 장식한 수많은 황금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적이 있다. 건물의 웅장함으로 유명세를 타며 갈수록 그 속을 장식한 황금에 대한 소문은 더 멀리 퍼져나갔고 교회가 주님의 임재가 아닌 부로 유명해지니 수많은 적의 침입으로 시달리다 결국 무너져 버린 것이다. 십만의 오스만제국 군사들의 공격에 비잔틴을 지킬 사람은 부녀자를 합해 겨우 7천 명, 수십만 명이 살던 풍요를 누리던 도시에 부가 떠나자 사람도 떠나고, 콘스탄틴성을 두른 난공불락의 삼중 성이 있다 한들 그 성을 지킬 사람이 없다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역사가들은 700명의 군사만 더 있었어도 콘스탄틴성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서방의 이웃들은 이해타산을 따지기 바빴고, 주님의 십자가를 창과 방패의 심벌로 형제 사랑, 이웃 사랑 대신에 약탈하고 정복하는데 사용하고, 국교화된 이후 기독교가 급속히 세속화되어 여신 숭배 대신 이교도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성모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우상화하고 급기야 콘스탄틴의 수호신은 예수님이 아닌 마리아가 된, 예수님은 마리아의 품 안에 안긴 어린아이로 전락시킨 이들의 가슴속에 진정한 복음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겠는가.
올 3월 그리스 국경에서 난민들이 추운 날씨에 가진 것을 다 뺏기고, 입고 있던 옷마저 다 벗겨지고, 팬티 한 장만 걸친 채 거의 알몸이 되다시피 터키로 다시 쫓겨난 소식을 접했을 때의 그 참담함은 몇 달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서구 기독교 국가들의 그리스도의 본질에서 떠나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잃어버린 국가 이기주의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이곳 무슬림들은 수백만 명의 난민을 받아들이고, 수년간 돌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알지 못하는 슬픔과 비애의 원인을 이제 조금 알 듯하다. 성소피아 성당과 술탄 아흐메드 광장에 모여든 수많은 젊은 청년들이 약자의 편에 서서 공의를 주장하는 자신의 종교, 그리고 이제는 회교 사원으로 변한 성소피아에서 예배를 드리는 자부심에 알라가 정말 위대하다고 마음에 새기며 외치는 것이 아닌가.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어지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처녀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혼미함이로다”(애 2:11) 주님이 왜 이 시대에 무너져 버린 예루살렘성의 비애를 다시금 느끼게 하시는 것일까? 주님께서는 오늘도 사랑으로 나에게 경고하신다. 주님 아닌 다른 것으로 채워진 모든 것은 무너져야 한다. 신앙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비록 예레미야가 겪었던 그 격한 감정의 아픔을 동일하게 느끼지 못한다 할지라도 사람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로 말미암아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신다.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애 3:19-23)
글 한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