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무 속에서

by wecrun

작년 9월, 안개가 낀 듯 도시 전체가 연기에 덮였다. 시커먼 재가 눈앞에 날아다니고 탄내가 코를 자극했다. 이곳 사람들의 말로 ‘까붓 아삽’이라고 하는데, 건기에 숲을 태워 그 연기로 이곳 ‘잠비’ 지역을 자욱하게 덮는 ‘연무’ 현상이다. 잠시 시내에 일을 보러 나온 나는 부랴부랴 마스크를 썼다. 신기한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다. 누구 하나 당황하는 기색이 없고 너무 자연스럽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라 그리 신기한 일도 아니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우리에게도 별일 아닌 것처럼 생각이 든다. 재가 눈앞에 날리는 이런 순간에도 시민들은 일상적으로 일하고 아이들은 운동을 한다. 마스크를 건네줘도 거추장스러워하며 착용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와 스마트폰 앱으로 대기 오염 지수를 확인하니 600을 상회하는 재난 수준이었다. 그 순간 ‘아! 심각한 상황이구나!’하는 위기감이 들었다. 고국의 친구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며 이곳 소식을 알렸다. 한국에서는 200 이상만 되어도 재난 문자가 온다고 한다. 목이 칼칼해지고 기침이 나기 시작했다. 우선 창문을 종이로 막고 에어컨을 틀었다. 더운 나라는 통풍이 잘 되도록 여기저기가 뚫려있는 집 구조라 전체를 막을 수는 없었다. 공기청정기를 구입하려 했는데 품절되어 쉽지 않았다. 여차저차 ‘한국산’ 모델 하나를 구했다. 공기 청정기를 돌리니 붉은빛이 났다. 붉은색은 최고로 위험한 수준이고, 그다음 초록색, 파란색 순으로 간다고 했다. 문을 막고 에어컨을 틀고 붉은빛이 도는 공기청정기를 돌리며 몇 주를 보냈다.

‘까붓 아삽(연무)’의 원인은 여러 가지로 이야기를 한다. 기본적으로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정글에 불이 붙어 2~3개월 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불은 건기에 일어나는 ‘자연발화’다. 이곳 건기에 3~4달은 비가 오지 않았으니 자연 발화가 일어난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두 번째는 화전민이다. 정글을 경작하기 위해 지역주민이 화전을 해서 밭을 일구는 것이 불법이 아니다. 세 번째 원인은 잠비 지역 주위에 엄청난 규모의 ‘팜’농장이 있는데, 팜나무가 오래되면 베어 없애는 것보다 불로 태우는 것이 더 저렴해서 일부러 불을 낸다는 것이다.

잠비 지역의 정글은 광활한 ‘이탄지’가 펼쳐져 있는데, 그 깊이가 수십 미터까지 되어 불씨가 땅속 밑으로 숨는 현상까지 일어난다. 이탄지란, 쉽게 말하면 식물 퇴적층이 쌓여있는 지형이다. 여기는 소방 헬기가 없다. 그리고 소방차가 들어갈 길이 정글 쪽에는 나지 않는다. 그래서 물을 가져다가 펌프를 이용해서 불을 끈다. 이 방법으로는 불길을 잡을 수가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리고 각자의 방법으로 기도를 한다.

한국에서 온 신문 기자의 요청으로 화마가 있는 지역을 갔다. 경찰들과 군인들이 동원되어 불을 끄고 있었다. 기자라는 말에 신분증을 조회하고 다들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대통령이 보내서 온 사람들이고,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 불을 끄기 위해서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알아주십시오.” 썩은 듯 쾌쾌한 냄새가 나는 시커먼 강에서 지역 원주민들은 목욕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직도 피난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마치 이 사람들은 피난을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태어나고 자란 곳을 떠나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자신들이 얼마나 큰 위험에 있는지를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그냥 받아들이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다. 연무 오염은 호흡기 질환을 일으킬 뿐 아니라 아이들의 뇌 발달에도 영향을 미쳐 정상적인 발달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다행히 11월 말쯤 우기가 시작되어 위험했던 사태는 좀 진정이 되었지만, 건기가 더 길어졌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중앙정부와 지역정부가 이 사태를 심각하게 살펴보고 대비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아무도 돌봐주지 않으시는 이 백성들에게 긍휼과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그리고 올해는 좀 더 나아지기를 기도한다.

글 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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