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찾은 실마리와 매듭

by wecrun

지난 9년 동안 여러 모양으로 이 나라에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묵상 중에 언어 및 문화센터를 제대로 시작해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가족이 함께 기도하고 고심하며 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작년 초, 제법 큰 가옥을 빌리고 사업 비자를 추진 중이었습니다. 사업체를 설립할 때까지는 무료였지만 한국어 강의를 각잡고 시작하고자 학생들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이 나라에도 유럽발 첫 코로나19 감염 환자를 시작으로 팬데믹이 덮쳐 2주 만에 문을 닫았습니다. 저희가 있는 곳은 1일 확진자 수가 한때 2,900명대까지 치솟았으며 지금도 평균 7~800명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공식적인 통계이며, 사실상 정확한 집계는 불가능합니다. 

그 후 사역자들이 연달아 필드를 떠나고 그때마다 저희 가정은 문자나 전화로 배웅하며, 만 11살, 8살, 3살의 세 아이들과 함께 텅 빈 센터 건물에서 계속해서 홈스쿨링을 하며 일상을 살아갔습니다. 지역 간 이동 제한이 있어서 지방에 사는 저희는 지인들을 만나러 수도에 가기도 어려웠습니다. 한국 대사관의 영사는 뚝 떨어져 있는 저희 가정을 걱정하며 늘 조심하라고 당부하였습니다. 교민으로서 폐를 끼쳐서도 안 된다는 부담과 어린아이들을 책임지는 부모로서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교지에서 인터넷 주일예배는 8년 차, 아이들과 오롯이 집에서 학습한 지도 어언 4년 차가 되었지만, 배달 문화가 딱히 없는 곳에서 가장인 아빠 외에는 외출도 자제한 채 삼시세끼를 꼬박 해먹고 산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왜?”라는 질문을 안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이 나라에 막 온 지 얼마 안 되어 수도 없이 했던 질문이었습니다. 재정 문제도, 관계도, 자녀교육도 다른 사역자들처럼 저희의 기대와 생각을 내려놓는 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질문을 바꾸신 분은 언제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사실 홈스쿨도 그런 과정을 거쳐 겨우 적응하는 단계였는데, 이제는 사역의 방향에 대해 저희 에게 숙제를 주시는 기분이었습니다. ‘사람을 적극적으로 대면해야 하는 직업 종사자가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늘 그렇듯 다시 질문을 바꾸고,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 주세요.”라며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 해 동안 가까운 지인의 가족들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예닐곱 번은 들었습니다. LPG 가스와 석유 공급에 전국적으로 차질이 생겼습니다. 반정부 세력의 공작이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오래된 수도관을 고치는 공사도 유난히 자주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저희의 “어떻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의 실마리가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의 즉각적인 순종을 원하셨습니다. 학교에 가지 못해 무료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온라인 한국어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2명으로 시작해서 30명과 매주 만나게 되었습니다. 택시 영업이 줄고 버스 배차 간격이 늘어나서 이동이 어려워진 친구를 자가용으로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통금 시간 안에 미처 장을 보지 못한 친구에게는 현지 음식을 요리해서 문 앞에 갖다 놓았습니다. LPG 가스가 다 떨어져 갓난아기를 냉수로 목욕시켜야 하는 친구에게는 한국어 강의를 듣는 학생이 갖고 있던 여분의 LPG 가스통을 배달해 주었습니다. 한국어 온라인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 친구에게 전화하니 코로나에 걸려서 숨을 제대로 쉬기가 어렵다기에 함께 말씀을 나눈 뒤 아이들 과 두 손을 모았습니다. 감사하게도 그는 집에 있는 동안 회복이 되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작은 일이었겠지만, 코로나 시국인지라 친구들이 정말로 고마워하며 이 도움이 큰 의미라고 말했습니다. 기뻤습니다. 사람들의 칭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웃의 필요에 반응하고, 말씀을 적용하고, 실천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어떻게?”를 조금씩 풀게 하셨습니다. 현지 친구들 대부분이 저희가 누구를 믿고 살아가는지 압니다. 믿음이 행함으로 바뀌는 여러 순간들마다 오로지 그리스도 만이 그들 마음에서 빛나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해가 바뀌고 하나님께서 뜻밖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사실 팬데믹 이후 언어 선생님과 온라인으로 신약 현지어 번역본을 같이 보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모르는 단어를 묻고 선생님은 이야기의 의미를 묻는 형식이었습니다. 조심스러워하던 저희와는 달리 선생님이 적극적으로 부탁해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헌법도 이미 바뀐 마당에 그래 해보자. 15주째 되던 날,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너 그거 아니? 우리 애들이 예수아(예수의 현지 발음) 이야기를 자주 들으니까 이제 제법 알고 있어.” 그녀의 남편과 여 동생도 집에 있을 때는 같이 듣기도 한답니다. 그 가정에 말씀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갈 줄 몰랐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 내가 요단땅과 헤르몬과 미살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시편 42:6) 전에 본 성경구절이 이해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며, 저희 또한 물리적인 한계에 부딪히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아침마다 아이들과의 질문과 대답으로 채워갔던 묵상과 공부 시간, 목숨처럼 지켰던 그 시간들의 매듭을 그날 지을 수 있었습니다. 늘 비슷한 일상에 회의감도 들었었는데 결국 “일상이 사역이다”라고 땅땅! 마무리해 주신 하나님께 부끄러움과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글 노아, 황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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