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같이 많은 비가 내리던 우기가 끝나고 건기가 찾아왔습니다. 이곳 동티모르에서는 우기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질 때면 많은 남성들이 아이들과 함께 윗옷을 벗고 단체로 거리를 달립니다. 한국에서는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비옷에 장화를 신기도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쏟아지는 비를 그냥 온몸으로 즐기는 듯합니다. 한국에서 이곳으로 올 때 가져왔던 우의는 빗속에서 세차할 때나 쓰이고 장화는 아직 신어보지도 못했습니다. 한국에서 후원 물품으로 보내주신 신발과 장화도 달란트 시장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아직 그 받은 신발이나 장화를 신고 다니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집에 고이 간직해 둔 모양입니다. 평상시에는 거의 맨발로 다니거나 아주 납작한 판과 끈으로 연결된 조리를 신고 다닙니다. 심지어 아이들이 축구할 때는 그 조리마저 벗어 던지고 흙바닥이든 거친 시멘트 바닥 위든 맨발로 뛰어다닙니다.
한국에서 보던 아이들과 이곳 아이들은 확연히 다릅니다. 이렇게 다른 문화 속에 사는 아이들과 함께 놀고,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고, 찬양하고, 간식을 먹는 것이 이곳 동티모르 에스페란자 사역의 전부입니다. 한국 교회 주일학교 프로그램에 비하면 보잘것없어 보이고 미련해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이곳 에스페란자 스쿨의 60명 남짓한 아이들은 우리와 만나는 월요일과 목요일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한 번은 어떤 아이 한 명이 타고 온 자전거가 제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흔히 한국 아이들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와는 달리, 어떤 브랜드명도 없고 심지어 브레이크도 없는 까만 자전거였습니다. ‘브레이크가 없는 자전거라니…’ 이 아이는 도로에서 어떻게 이 자전거를 멈출까요? 신발도 잘 신고 다니지 않는데, 맨발과 땅의 마찰로 자전거를 세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그러나 이 까맣고 조그마한 자전거를 타고 오던 아이의 눈동자는 전혀 불행해 보이지도 않고 보는 이로 하여금 동정을 끌어낼 만한 그 어떤 조금의 어두움조차 허락되지 않은, 해맑고 행복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나고 어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가난을 몸에 담고 삽니다. 이렇듯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가치 기준은 참 불공평하지만, 유일한 한 가지 공평한 것이 있다면 주님은 부유한 자든 가난한 자든 상관치 않으시고 모두에게 구원을 허락하셨고 그들 모두의 전부가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부유한 자도 주님만이 전부라 고백하게 만드시고 가난한 자도 주님만이 전부라 고백하게 만들어 가십니다. 브레이크가 없는 자전거를 타지만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기에 전혀 개의치 않는 삶!
너무나 가난해서 보이는 아이들마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만드는 이 나라, 동티모르에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 빵보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만족을 주시는 주님을 만나도록 소개하는 삶, 이것이 저희 가정을 이곳 동티모르에 보내신 주님의 뜻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동티모르 사역지로 오기 전 동료, 선배 선교사님들께 제가 동티모르에 도착하면 ‘왜 주님께서 이곳으로 보내셨는지 그 이유를 기쁨으로 발견하고 싶다’고 고백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안개 속에서 희미하였던 형상이 점점 뚜렷이 보이게 되듯, 주님이 저희 가정을 보내신 이유가 점점 선명해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기쁨으로, 또한 아멘으로 저희에게 받아들여지기를 기도합니다. wec
글 박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