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가족의 품을 떠나본 적 없는 내가 한국을 벗어나 해외에서 1년간 홀로 살아간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 할 결심이었다.
돌이켜보면 이 엄청난 결심의 과정 중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그분께서 완벽한 타이밍에 나를 인도하셨고, 모든 것을 그분이 하셨다는 것 외엔 아직까지도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선교의 ‘선’ 자도 모르던 나, 그저 그분이 보시기에 기뻐하실 비전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을 뿐인데, 예상치도 못한 길로 이렇게 보내신다고? 지금도 어색하고 웃음도 나지만, 마음은 여전히 평안하고 편안하다.
국제본부에 도착해 태국에 적응하고 많은 선교사님들과 인사를 나누며 교제가 시작되었다. “하나님, 저 이렇게 행복하게 누려도 돼요?” 싶을 정도로, 만나는 모든 분을 통해 그분은 나에게 축복의 만남과 교제를 허락하셨다. 행복한 그들을 보며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하나님, 나도 이렇게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매일 동행하며 교제하고 싶어요.’그들의 간증을 듣기만 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여 여간 난감한 게 아니었다. 슬퍼서가 아닌 그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이신 주님께서 행하신 일들이 감사해서 자동으로 반응하는 것 같았다.
감정이 몰아치고 싶지 않은 나의 이성과 아버지께서 그저 부어 주신 마음 사이의 간극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태국에 온 지 한 달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곳으로 보내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왜?’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던졌음에도 선명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렇게 태국에 겨우 적응할 때쯤, 비자여행을 해야 할 시기가 찾아왔다.
큰일이었다. 아직 태국에서 도마뱀이나 벌레들과 친해지지도 못했는데, 이번에는 더 열악한 L국으로 가게 되었다.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다. “거기는 더 심할 텐데 괜찮겠어요?” 그런 질문을 들으니, 기대보다는 좌절감과 피하고 싶은 마음만 들었다.
나라 이름만 간신히 알고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관련 정보를 일부러 검색하지 않았다. 기대도, 실망도 하고 싶지 않았기에. ‘극심한 벌레와 곤충 공포증을 과연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드디어 L국 도착. ‘뭐지?’ 나를 마중 나온 리더들을 만나 차를 타고 숙소로 향하며 바라본 이곳은, 내가 상상하며 두려워했던 느낌과는 정반대였다. “어떤 것 같아요?”라는 질문을 받음과 동시에 나는 환하게 웃으며, “너무 좋은데요?”라고 답했다.
가식이 아니었다. 확실히 허름하고 가난한 나라 같았지만 내가 느낀 감정은 환하고 밝은 느낌이었고 나는 이곳이 정말 좋았다. 아직도 그 이유는 모르겠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기쁨으로 가득 찰 거라는 이유 모를 확신이 들었다.
이곳에 계신 모든 선교사님께 초대를 받아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늘 풍성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참 기뻤는데, 어떤 분은 나와 밀접하게관련되어 있기도 했고, 어떤 분은 오래 본 사이처럼 정말 편하고 재미있었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한다는 것이었다. 열악한 이곳에서 뭐가 그렇게 행복하세요? 물어보면 “아유, 하나님과 이렇게 동행하고 그분의 뜻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지요, 뭐가 더 필요한가요?”
그렇다. 그들은 모두 행복하다. 여기 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여유롭고 큰 열정이 없다. 그렇지만 그들 또한 행복하다. 다른 의미의 행복이겠지만 나는 그들이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토록 두려워했던 곤충과 벌레가 생각나지 않을 만큼, 나는 오늘도 그분이 보내신 이곳에서 행복한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조금은 이 시간을 허락하신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기도 하다. wec
글 이지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