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에서 아랍어를 배우면서 놀랐던 것은 이스라엘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선생님들이 “그곳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이다”라며 정색했던 일입니다. 이스라엘 국가를 인정조차 하지 않습니다. 레바논도 이스라엘은 적대국이라 이스라엘 비자가 있으면 입국이 어려워 옆 나라에 살면서도 방문을 못했는데, 이번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에 대한 아랍국가들의 반응을 보면서 이스라엘을 향한 적대감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을 확인했고, 이제야 왜 사람들이 중동을 화약고라 부르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이 이어지면서 중동 대부분의 국가는 매주 금요일 팔레스타인 지지를 위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무슬림들이 격분하며 거리에 나오고,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 관련 시설들을 공격하는 일들이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맥도날드, 스타벅스, KFC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대형 쇼핑몰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며 파업하기도 합니다.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늘어날수록 가자지구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교전이 있었던 레바논의 긴장도 높아졌습니다.
제가 지내던 Z 도시는 레바논 남부와는 거리가 있지만 2006년 이스라엘과의 전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확전되면 레바논 전역이 공습 대상이 되기 때문에 레바논 한국대사관과 현지에 계신 사역자분들과 비상계획을 수립해서 대피장소를 정하고, 비상식량을 확보하고 언제든 대피할 수 있도록 짐을 꾸려 놓고 비상시를 대비한 생활을 했습니다.
가자지구에서의 긴장이 고조될수록 레바논 남부 국경 지역에서의 교전도 확대되면서 대사관의 출국 권고가 이어졌고 또 선교지 리더의 권유로 지금은 요르단에 잠시 머물고 있습니다. 레바논을 떠나면서 심경이 복잡했습니다. 난민들에 대한 미안함,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대한 불안함, 언제 돌아갈지 모르는 막막함 등 여러 가지 감정들이 몰려왔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늘 그렇듯이 모든 불안한 상황 가운데, 변함없는 사랑으로, 영혼의 피난처로, 구원의 반석으로 저를 붙잡아 주시고 주님만 바라보게 하십니다.
헤즈볼라 수장의 연설 시, 레바논 모든 국민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연설을 지켜봤습니다. 헤즈볼라의 결정이 레바논 국가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레바논은 수많은 전쟁의 상처로 가득한 나라입니다. 기독교와 무슬림의 전쟁, 무슬림 수니파와 시아파의 전쟁,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이 조그만 땅이 상처로 얼룩져 있고, 경제적 위기까지 겹치면서 나라의 운명이 벼랑 끝에 있는 상황입니다. 이때 이스라엘과의 전쟁이 발발한다면 레바논은 회복 불능이 될 것이고, 제5차 중동 전쟁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하게도 전쟁 확대 의사가 보이지 않았고, 이후 이란과 헤즈볼라는 하마스를 계속 지지하지만 전쟁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발표해 많은 사람들이 안도했습니다. 아직 레바논 국경에서 계속 교전 중이고, 교전 범위 확대로 많은 긴장 속에 있지만 저는 12월 초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지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해야 할 예루살렘 땅이 분노의 총성으로 가득 차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얼마 전 카페에서 한 여대생이 저에게 다가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에서 누구를 지지하는지 물었습니다. 중동에서는 매우 예민한 문제이기 때문에 혹여라도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표현을 하게 되면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가자지구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이 몹시 아프고 하마스의 공격으로 희생당한 사람들 또한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좋은 사람은 없다고 했습니다. 서로를 용서하지 않으면 이와 같은 일이 또다시 반복될 것이라고요.
분노와 원망으로, 거짓과 폭력으로 가득 찬 이 땅에 너무도 절실하게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가 필요합니다. 유대인들이 구원의 문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도록, 거짓의 영에 사로잡힌 무슬림들이 빛 되신, 진리 되신 주님께로 나아오도록, 그래서 모든 믿는 자들이 여호와의 산에 올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전쟁이 멈추어지고, 이곳에 하나님의 평강과 화해가 임하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글 은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