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온 한 선교사 자녀(MK)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선교지에서 국제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 친구들을 따라 미국 대학에 입학했지만, 막상 자신이 ‘미국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교환학생 자격으로 한국에 오게 되었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쓰는 한국어가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지며 ‘나는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못한 존재인가?’라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런 고민 끝에 그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기로 결심했고, 결국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수업 시간에 사용하는 한자는 여전히 어려웠다고 한다.
또 다른 MK는 캐나다 대학에 진학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수업을 들으며 깊은 고민에 빠졌고, 결국 군 입대를 선택했다.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왔을 때는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당황했던 경험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한국 대학에 입학해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으며, 자취를 하며 혼자 사는 것이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점차 익숙해졌다고 전했다.
또 다른 한 명은 선교지에서 9학년까지 다니다가 한국의 대안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 대학에 입학하여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선교사 자녀들이 성인으로 성장해 나아가는 시기에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시에서 좋은 성과를 내어 대학에 입학한다고 해도, 이후의 대학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성인으로서의 삶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기독교적 가치관 안에서 자라온 MK 또는 TCK(제3문화 아이들)라면, 세속적이고 다양한 문명이 공존하는 사회로의 진입이 큰 도전이 될 수 있다.
최근 한 TCK 관련 온라인 강의에서는 “기독교 학교에 다닌 아이들이 논란이 되는 주제들에 대해 깊이 있게 배우지 못한 채, 세속 사회에서는 그것이 일상처럼 여겨지는 상황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단순히 ‘그건 옳지 않아’라고 말하는 수준을 넘어, 그 사회 속에서 실제로 살아갈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준비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대학과 같은 세속적 환경에서는 성(性) 정체성, 성별 다양성, 동성 결혼 등과 같은 젠더 이슈부터 낙태, 생명 윤리, 인종과 사회 정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치관의 충돌을 마주하게 된다. 또한 종교 다원주의, 마약, 음주, 성적 자유에 대한 관용적 태도, 과학과 신앙의 관계, 인터넷, SNS, 대중미디어가 전달하는 세계관 등도 MK들이 접하게 될 주요 이슈들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기독교적 가치와 기준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 많기 때문에, MK들이 쉽게 당황하거나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자녀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세울 수 있도록 영적인 기초를 다지는 동시에, 변화하는 문화와 사상의 흐름을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 절실하다. 예를 들어 “성 정체성은 각자의 선택”이라는 주장이 대학 캠퍼스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 때, 자녀가 성경적 관점과 사회적 태도 사이에서 균형 잡힌 해석과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일상생활을 위한 실질적인 기술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학 생활은 단순한 학업의 연장이 아니라, 자립적인 삶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자녀가 직접 식단을 구성하고 예산 내에서 장을 보고 요리해 보는 경험은 매우 좋은 훈련이 된다. 청소, 세탁, 공과금 관리 등 기본적인 가사 기술을 익히게 하며, 생활비, 교통비, 책값 등 예상 지출 항목을 함께 검토하고 예산을 세워보는 연습도 필요하다. 대출과 신용, 빚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설명해 주어야 하며, 가능하다면 아르바이트를 통해 직접 돈을 벌고 관리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시간 관리는 독립적인 대학 생활을 성공으로 이끄는 열쇠이다. 자녀가 하루 일과를 계획하고, 과제, 모임, 집안일 등 다양한 활동을 스스로 조율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오전에는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도서관에서 과제를 수행하며, 저녁에는 친구와 식사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식의 균형 잡힌 일정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러한 준비는 단순한 기능 습득을 넘어, 자녀가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본질적인 힘이 된다.
선교지라는 독특한 환경 속에서 자라난 MK들이, 이제는 낯설고 세속적인 문명의 세계 속에서 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수많은 도전과 싸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제 성인이 된 그들에게, 진심 어린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wec
글 Gill Bryant (MK Education Consultant)
번역 하은혜 (International Safeguarding Team)
자료 출처 EDUCARE 2022년 6월호 (EDUCARE는 국제WEC 사역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