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탄 독일행 버스. 유럽 여행 코스같이 들리는 이 여정이 우리에게는 선교지로 향하는 첫 발걸음이었다. 시댁인 이탈리아에서 지내며 이탈리아 거주권을 먼저 받고 그제야 독일로 향할 수 있었다. 금세라도 받을 것 같았던 이탈리아 거주권은 6개월이 걸려서 받았다. 긴 기다림의 끝에 코비드-19가 이탈리아를 강하게 덮쳐 독일로 가는 길이 아슬아슬했다. 우리의 짐 전부인 4개의 캐리어를 끌고 15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독일에 도착했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 날 독일은 코비드-19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국경을 닫았다. 비록 집을 구하지 못해 임시 거처에서 지내야 했지만, 정확한 날짜에 이곳으로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섬세하심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곳으로 우리를 부르신 주님의 계획이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것이 지금까지도 이곳에서 지낼 수 있는 큰 힘이 된다.
독일에서 선교한다고 하면 아직도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막상 이곳에 와보면 그 생각이 바뀐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슈투트가르트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작은 독일 마을이다. 이 작은 마을에도 난민들을 위한 캠프가 있어서 터키, 이란, 아프가니스탄, 시리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또는 동유럽 각지의 사람들이 와서 살고 있다. 대부분은 무슬림들이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거주 허락을 받아 독일 전역에서 살아가고 있다. 길을 걷다가 히잡을 쓴 사람들, 아랍어를 쓰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일상이다. 어떨 때는 여기가 독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구의 24%가 이민자들이라고 하는데 그 수에 난민들의 수까지 더하게 되면 얼마나 많은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독일이라는 나라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말 신기할 정도로 독일인들과 난민 또는 이민자들의 삶이 나누어져 있다. 특별히 우리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과 같은 곳에서는 그 차이가 훨씬 더 뚜렷이 나타난다. 차가운 문화, 개인주의 문화가 강한 독일 사람들과 따뜻한 문화, 가족 또는 공동체 중심의 문화에서 온 이주자들의 삶의 모습이 매우 다르며, 이들이 어우러지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 가운데 독일인이 아니면서 독일로 난민들을 섬기러 온 우리는 두 극과 극의 문화를 동시에 배우며 적응해 가야했다.
예를 들면 우리는 관계를 쌓기 위해 집에 사람들을 자주 초대하는데 누가 오느냐에 따라 메뉴부터 주고받는 농담까지 완전히 달라진다. 저녁 식사로 차가운 음식을 먹으며 각자가 먹을 양만큼 덜어 먹고 분명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독일 사람들을 초대했을 때와 따뜻한 음식을 먹으며 주인이 덜어 주는 만큼 먹고 대화가 관계 중심적인 나라들에서 온 사람들을 초대했을 때 우리는 그들의 문화에 따라 다르게 준비하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때로는 우리 스스로 카멜레온 같다고 말한다. ‘나’라는 존재는 변하지 않지만, 만나는 사람들의 문화에 맞추어 변하는 우리의 모습이 그와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복음은 그 두려움을 뚫고 다름 가운데 하나 됨을 이루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으로 다른 문화들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고 싶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다르게 창조하셨고 그 다름을 가지고 한 몸이 되어 서로를 섬기게 하신다.
서로 다른 문화는 때로는 불편하고 잘 모르기에 두렵기도 하지만 다름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부하게 하고 완전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연합이 일어나고 서로를 섬기는 하나님 나라의 삶이 이 땅 가운데서도 일어날 것을 기대한다. wec
글 이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