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로 소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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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이 막 시작된 어느 날 오후, 회사의 업무용 차를 수리하기 위해서 현지 정비소를 찾았다. 간단한 고장인 줄만 알았는데 차를 맡기고 가란다. 그동안 선배 선교사들에게 들었던 내용이 있어서 선뜻 현지 정비사를 믿고 자동차를 맡길 수가 없었다. 고장부위를 분해하고 무엇을 고칠 것인지 설명을 듣고 나니 약속시간이 다되었다. 어떨 수 없이 차를 맡기기로 하고 더 수리할 곳이 있으면 반드시 확인 전화 후 수리를 진행하도록 부탁하고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차에 막 탔을 때, 운전기사가 “한국 사람이에요?”라고 한국말로 물었다. 이 나라도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높다. “대장금”, “주몽”이 지상파 방송에서 다섯 번도 넘게 방영되었고, 드라마에 별 관심이 없는 나같은 사람은 들어보지도 못한 드라마 이름을 물어보기도 한다. 요즘은 한국에서 막 방영이 끝난 드라마가 곧바로 더빙되어 방영되기도 한다. 더군다나 한국에 노동자나 유학생으로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 가끔 길에서 한국어로 말하는 사람을 만나곤 한다. “네, 한국 사람이에요”라고 대답했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운전기사는 이때다 싶었는지 한국말을 연습하기 위해서 계속 대화를 시도했다. 목적지에 도달할 때쯤 운전기사는 나의 전화번호를 물어봤다. 집에 초청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몇 번 택시 기사에게 전화번호를 주었고 그들은 초청 하겠다고 했었지만 실제로 초청한 사람은 없었다.
다음날 바로 이 운전기사에게서 점심 식사를 함께 하자며 집으로 초청하겠다고 “텔레그램” 메시지가 왔다. 마침 초청한 날 오후에 약간의 여유가 생겨서 초청에 응하기로 했다. 운전기사의 집에 갔을 때, 집에는 그의 두 형들과 부모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부친은 은퇴한 후 파트타임 회계사로 일을 하고 있었고, 차 한 대로 삼 형제가 돌아가면서 택시 업을 하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 하는 가족이었다. 그의 첫째 형은 결혼하여 아들 하나가 있었고, 둘째 형과 그는 서른이 넘었음에도 미혼이었다. 둘째 형도 한국어를 배우고 있었는데 둘 다 한국에 노동자로 가서 돈을 많이 벌어서 집도 사고 결혼도 하고 차도 바꾸고 싶다고 했다. 집은 가난했지만 손님 접대문화가 중요한 이 나라의 전통대로 상에는 많은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식사 후 그는 자기가 공부하고 있는 한국어 책을 가져오더니 읽어 달라고 했다. 책을 펼쳐보니 한국어 시험 기출문제집이었다. 문제를 읽자 그와 그의 형이 경쟁이 붙었다. 엊그제 맡긴 차를 찾아야 하기에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다른 택시를 부를 필요 없이 그의 차를 타고 정비소에서 차를 찾았다.
그리고 얼마 후, (아마도 토요일로 기억된다.) 아침에 갑자기 텔레그램에 연이어 메시지가 들어왔다. 이상하다 싶어 전화기를 보니, 그 운전기사가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의 텔레그램 그룹을 만들고 그곳에 나를 넣은 것이다. 그룹원들의 한국어 수준은 제각각이었고, 모두 공부한 지 1년 미만에 지역 출신도 다양했다. 처음에 10명 남짓이었으나 최근 한국어 시험 일정이 발표되면서 지금은 120명이 넘는다. 몇 명 안될 때는 맞춤법도 교정해주고, 질문에 답도 하고, 가끔 기출문제를 찾아 올려 주었는데, 인원이 늘면서 이제는 서로 교정하고 답하고 있다. 간혹 한국 드라마 OST가사나 특정 장면의 동영상을 올리기도 하고, 한국어를 A어로, A어를 한국어로 번역해달라고 요청한다. 요즘 이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들을 모니터 하다 보면 한우 단어장, 한국어 속담, 사자성어 등의 A어 번역 자료와 이곳의 최신 뉴스와 여러 괜찮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우연한 기회로 들어온 메신저 그룹을 통해서 나는 또 다른 하나의 소소한 일상을 경험한다. w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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