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한 선교사 자녀 학교에서 공부하는 고등학생 딸이 방학을 맞아 한국에 왔다. 나는 딸이 돌아가기 전에 가족이 함께 며칠 여행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어렵게 가족 여행을 계획했다. 딸이 즐겁기를 바라며, 먹고 싶은 것을 먹여주고, 보고 싶은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재정적 부담에도 기꺼이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행 도중 딸이 하는 고백은 “엄마, 나는 짐 싸고 여기 저기 다니는 게 이제 너무 힘들어요. 나는 그냥 집에서 쉬고 가족과 집에서 소소한 일상을 보내는 것이 좋아.”라는 것이었다. 순간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과 수고를 딸이 몰라주는 것 같아 너무 서운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기숙사에 살며 공동체 생활을 하고, 방학마다 한국과 그 나라를 오가는 딸에게는 이 여행마저도 짐을 싸고 옮겨 다니는 힘든 수고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난 십여 년간 부모를 따라 선교지로, 기숙사 학교로 이런저런 이동을 경험한 딸의 힘겨움도 새삼 느껴졌다. ‘아직은 어린 나이에 부모와 멀리 떨어져서 살고, 모든 결정을 스스로 해야 하며, 계속되는 기숙사 생활이 얼마나 고단하고 외롭고 피곤할까’ 딸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들이 울면서 했던 “엄마는 선교사는 해봤지만, 선교사 자녀는 안 해봤잖아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여기저기 엄마 아빠를 따라다녀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학교를 이 학교 저 학교 옮겨 다니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라는 말도 생각이 났다. 부모로서, 선교사로서 나는 과연 이 아이들의 마음과 상황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다시 한 번 돌아보게도 되었다. 그리고 ‘도움을 줄 때에는 도움을 받는 사람의 실제 필요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과 ‘선교사 자녀들을 돌보기 위해서는, 이들의 시각과 관점으로 이들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교회에 나온 선교사 자녀들을 만났을 때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부모가 선교사니까, 당연히 신앙이 좋겠지, 부모가 선교사니까 뭔가 다르겠지’라는 눈으로 이들을 바라보고 “한국에 오니까 좋지? 우리나라가 선교지보다 좋지?”라고 이들에게 질문한다면 어떨까? 무척이나 당황스러울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도 주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는 경험이 필요하고, 이들도 여느 아이들처럼 한참 성장하는 아이들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교지에 오래 살며 그곳이 자기의 고향같이 된 아이들에게 한국은 신기하고 편하지만 여전히 낯설고 적응이 필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이 한국에 왔고, 선교사 자녀가 교회에 왔기에 당연히 금방 익숙해지고 적응할 것이라는 기대로 이들을 바라본다면 이들은 참으로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선교지가 이들의 고향이 되었고, 그곳에 친구들이 있으며 한국이 아직까지는 낯선 고향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이들만이 가지는 독특한 문화를 기꺼이 받아준다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안전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부모의 선교지에서의 비자발적 출국으로 귀국하는 선교사 자녀들이 늘고 있다. 학업과 입시, 군 입대 등등 이런저런 이유로 귀국하는 선교사 자녀들도 적지 않다. 한국에 계속 늘어나고 있는 선교사 자녀들을 잘 돌보려면 상황과 필요를 이들의 입장과 관점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단체가, 교회 공동체가 이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품어 주며 이들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실제적 필요를 도와준다면 이들에게 큰 힘과 격려가 될 것이다. w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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