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중에 대학원 학생들에게 꼭 내주는 과제가 있습니다. “이제부터 한 주간 동안, 홀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에 오로지 자신의 감정만을 아뢰어 보십시오. 그리고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세요.” 많은 학생이 순간 당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마치 컴퓨터 화면에 버퍼링이 일어난 것처럼 어버버버 하다가 다시 질문합니다. 그러면 저는 “예, 맞습니다. 그날 경험한 감정을 날 것 그대로 하나님께 말씀드리기만 하면 됩니다.”라고 답합니다.
다음 주, 과제를 마친 학생들은 피드백을 하고 싶어 기대에 가득찬 반짝이는 눈으로 수업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몇몇 분들은 기간을 연장하여 두 주간 시간을 더 드려도 과제 수행을 어려워합니다. ‘차마 그런 내용을 하나님께 어떻게 말씀드립니까? 주님, 저 xx, 저 김 장로(자신의 남편), 저 xx, 곱게 봐주시면 안 됩니다. 저 xx는 한 대 치시는 게 옳습니다. 뒤통수를 아주 세게 치셔야 합니다. 이런 내용을 어떻게 고스란히 기도로 합니까? 저는 이제껏 그런 식으로 기도를 드려본 적이 없습니다.’
감정은 우리 인격의 커다란 덩어리입니다. 또 다른 하나의 덩어리는 인지(생각, 신념)입니다. 인격이 성장한다고 할 때는 이 두 가지 영역이 성숙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고스란히 우리의 영적 성장에 영향을 줍니다. 마음의 일은 그대로 영혼의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자녀로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인지 발달뿐 아니라 감정 발달까지 모두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지와 감정을 비껴가는 길로 우리를 이끄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인지발달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참으로 눈물겹도록 계속됩니다. 배우고 또 배우고, 고치고 또 고치면서 과거의 설렁한 생각들이 합리적이고 짜임새 있게, 근거를 갖추며 발달합니다. 인지가 잘 발달 되면 외우고 공부하며 익힌 성경 말씀이 삶의 지침으로 기능하는 데 매우 유용해집니다. 덕분에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을 향해 바르게 걸어갈 수 있게 됩니다. 다만 알고 있는 것의 다소가 영적 성장과 꼭 일차원적으로 비례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주 조금만 알아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게 되는 일이 너무 흔해서 인지적으로 보았을 때 이는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그런데 감정 발달은 어떨까요? 감정도 인지처럼 계속해서 발달합니다. 감정을 인식하고, 또 제대로 인식하려 노력해야 왜곡하지 않고 느낄 수 있습니다. 상대방은 걱정해서 건넨 말에 적대감을 느끼는 것, 상처 입은 마음이 무너지고 있는데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열등감에 찌들어 소소한 성공이나 따뜻함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것 등, 이 모든 것이 감정 미발달의 표현입니다.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하고, 사랑스럽게 느낄 때 가슴이 따뜻해지지 않습니다. 감정은 인지보다 누적된 이전 경험의 영향을 더 받습니다. 감정 발달이 멈춘 채 어린 시절 경험치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지는 발달하고 몸은 성장하니까 어엿한 성인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몸은 어른인데 감정 사용은 아이처럼 미숙합니다. 어떻게 분노를 처리하는지, 돌봄을 표현하는지, 막연함을 이겨내는지 알지 못한 채 선교사가 되고 사역자가 되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이마 한가득 피 맛을 보게 됩니다. 인간은 감정을 통해 의미를 파악하고 가치관을 드러내기 때문에 감정 능력이 미약하면 머리로 외우고 있는 것 이상의 뜻깊은 삶을 살기 어려워집니다. 이런 지점에서 마음의 고통은 성장의 기회가 아니라 파멸의 증거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는 놀랍고 놀랍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넣어두신 한 가지 아이디어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나 멈추다 못해 죽어버린 감정 나무가 다시 살아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방법 또한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릅니다. 그 방법이 바로 ‘백 허그’입니다. 우리가 정제되지도 않고 알아먹지도 못하는 미숙한 날것의 감정을 느낄 때, 그래서 차마 하나님 앞에서 아뢰지도 못하고 뒤돌아 눈물 흘리며 지독한 실망과 죄책감에 시달릴 때, 조용히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백 허그가 있습니다. 감정은 이럴 때만 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것을 날마다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오라는 진짜 의미입니다. wec
글 최금순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상담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