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집돌이다. 집 밖에 나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세네갈 남쪽 카자망스 지역은 정말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세네갈 남쪽 지역은 다른 지역과 달리 자연도 아름답고 먹거리도 많아 모든 것이 풍성하다는 얘기를 자주 들어왔기 때문이다. 때마침 언어 도우미인 두 현지 친구가 웬일로 나에게 카자망스를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우리 언어 센터에 세네갈에 온 지 얼마 안되는 미국 선교사 한 명이 있는데, 그가 이 두 친구에게 카자망스로 여행을 가자고 졸랐다는 것이다. 조금 급한 감이 있었지만 기회가 왔고 팀리더도 세네갈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잘 다녀오라고 했다.
그러나 여행은 내 맘 같지 않았다. 어쩌면 처음부터 우리 넷의 여행 목적이 다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미국 선교사는 말 그대로 자유로운 여행을 원했고, 난 그저 카자망스 지역의 풍요로움을 즐길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마냥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이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언어 도우미 두 명이 카자망스 출신’이라는 것이었다. 10시간 남짓 운전하여 도착한 그날부터 우리들의 가정 방문은 끝이 날 줄을 몰랐다. 한 친구의 외삼촌 집에 가면 고모 집에 인사드렸는지를 물어보았고, 고모 집에 가면 작은 아버지 집에 인사를 드렸냐는 식의 질문이었다. 우리는 ‘인사’라는 것이 이들 세네갈 문화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미 알고 있었지만, 여행 내내 쉬지 않고 마을을 방문하며 인사만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마스크를 쓰고 인사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왜냐하면 그곳엔 단 한 명도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우리는 마스크를 벗었고 먹는 것도 생활하는 것도 그들의 방식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날은 얼마나 덥고 습하던지, 첫날 밤 더위를 참지 못한 미국 선교사는 이틀도 채 되지 않아 결국 밖으로 나가 선풍기 한 대를 사 왔다. 나의 경우는 집에서 모기 한 마리만 내 주위를 얼쩡대도 반드시 잡아야만 잠이 드는 성격인데, 수많은 모기로 인해 방어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은 피곤하다 못해 아주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1년 넘게 함께 충분히 알고 지냈다고 생각했던 나의 언어 도우미이자 가장 친한 이 두 세네갈 친구의 사고방식에 내가 갈수록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마치 이들의 이번 카자망스 여행이 자기들의 가족들에게 이익을 주고, 본인들도 이익이 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챙기려는 것으로만 보여졌다. ‘나의 마음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것을 알기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 내 속에서부터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었다. 그 둘은 이미 카자망스에 내려갈 때부터 우리와는 상의 없이 가족들에게 가져다줄 짐들을 과하게 싣더니만, 올라올 때는 다시 다카르에 오면 팔아서 이득이 될 꿀이며 망고 등을 채우기 위하여 여기저기 원하는 곳에 차를 세우라 하고 짐을 싣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예정에 없었던 모르는 사람 한 명마저 태우고 돌아와야만 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일어났다. 그뿐만이 아니다. 재정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처음부터 이들은 교통비의 아주 적은 부분만을 지불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런데 그 약속을 가볍게 여기고 은근 슬쩍 넘어가려고 하질 않나, 예정에 없었던 지출이 계속될 때에도 자연스레 그것은 나와 미국 선교사의 몫이라고 생각하질 않나…… 마치 ‘네 돈이 내 돈’이라는 식이었다. 갑자기 예전에 읽었던 어느 한 선교사님의 ‘파인애플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래 그 이야기가 아프리카 이야기였지. 이렇게 이해가 잘 될 수가……’
이 어려웠던 며칠이 지나고 집에 도착하였는데, 다음 날까지 쉬어도 부족할 판에 오자마자 곧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하더니 고열이 시작되었다. 결국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두 주간 방 한 칸에서 격리되어 있었다. 그러한 환경은 나로 하여금 자연스레 이번 여행에 대한 이런저런 관점에서의 생각들을 해보게 만들었다. 우리 팀 안의 여러 선배 서양 선교사님들은 한국이 세네갈과 같은 명예와 수치 문화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우리가 이들을 이해하는 것이 좀 더 수월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미 뉴질랜드 MTC(선교사 훈련 대학)시절부터 세네갈에 대해 배우고 조사하고 공부하였던지라 나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직접 이들을 경험하고 이들 문화에 부딪히면서, 선교사로서 한 다른 나라에 와서 살면서 그들의 문화와 삶의 방식에 적응해 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다시 한번 깨달아 가고 있다. 아무래도 파인애플 이야기를 쓴 선교사처럼 개인적으로 깊이 있게 깨닫는 것은 나에게 시간이 좀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 여행을 통해 내 안에서 이리저리 고민하며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되어가는 것 같다.
주님께 지혜를 구한다. 이로 인해 이들의 방식에 질려서 내가 그들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지혜로 내가 배울 것들을 잘 배울 수 있도록, 그래서 세네갈 사람들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 맞다. 경험해야 할 것들도 많고, 배워야 할 것들은 더욱 많은 것 같다.
글 설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