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하나님마저 그 얼굴을 숨기신 것 같은 지난 1년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여러 나라에서 상상초월의 사망자가 나오고, 방역과 그 여파 등으로 참으로 어이없는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치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비행기들이 줄지어 취소되었습니다. 다행히 이동이 여의치 않아지자 재외 국민 보호 차원으로 영사관에서 전세기를 마련했습니다. 이웃 마을을 가는 것도 허가가 필요했고, 65세 이상은 자가용이나 동행자가 없으면 외출을 금지시킨 상황이었습니다. 방역을 뚫고 허가서를 받아 한국에 들어와 1년 4개월을 보냈습니다. 전염병 외에도 국내외 정치 상황들로 줌과 카카오톡으로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동지들과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19 방역의 비대면이 가져온 역발상적인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에 체류하면서 그동안 약해져 있던 몸의 잔병들이 아우성을 치며 드러났습니다. 잇몸이 곪으며 썼던 항생제 후유증으로 간경변이 간부전이 되고, 입안에 곰팡이균 편평태선이라는 이름 외우기도 어려운 병이 생기는가 하면 간성 당뇨에 갑상선 결절 등등 하나 치료하면 다음 것이 줄을 서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여행 준비로 백신을 맞아두는 것이 좋을 듯하여 아스트레제네카를 맞은 삼 일째 잠깐 정신을 잃고 후유증으로 하루에 체중 2kg이 왔다 갔다 하는 부종이 계속되었습니다. 건강이 바닥을 치면서 마음도 많이 가라앉고 이렇게 선교지로 돌아가서는 민폐만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무료로 친구의 재래식 원룸에서 지내고 있던 중 터키 집의 주인으로부터 집을 판다고 짐을 빼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살고 있던 원룸도 정리할 계획이라는 소리에 결단을 내렸습니다. 하늘 아래 땅 위에 주님 계신 곳이면 어디든 살겠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지만 머리 둘 곳이 필요하고 아무리 가방 인생이라도 한군데 정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억, 조 단위의 돈이 회자되는 세상에서 천만 원 손에 쥐면 가슴이 부르르 떨리는 선교사, 국가 임대주택이라도 되면 하는 바람으로 몇 번 신청서를 냈지만 번번이 점수가 모자라 떨어지고 결국 셋집을 구했습니다. 24제곱 미터, 단칸방에 몇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 반지하지만 뜨는 해와 지는 해가 건물 틈새로 비춰주는 보송보송한 방을 얻었고, 집주인도 장로와 권사, 주님이 인도하셨다는 생각이 들어 계약을 했습니다. 보증금은 빚이라며 조금만 받았으나 수입 없는 한국생활에 부담스러운 월세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월세 매물도 거의 없고 반전세 가격도 천정부지로 오르는 때여서 공급하실 주님을 의지하고 결정을 했습니다.
25kg의 가방이 힘겨워 2~3kg을 빼고도 가방을 끌 수 없는 연약해진 제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는 친구들의 배웅으로 한국을 떠나오면서 때마다 순간마다 도우시는 주님의 은혜를 느낄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도착하는 날 이스탄불에서 팀의 큰 모임이 있어 한꺼번에 인사도 드리고 아쉬운 클로징을 했습니다. 사역을 마감하는 소감을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아무 생각이 없이 담담합니다. 그저 돌아가 제 침대에 눕고 싶을 뿐입니다.” 다음 계획을 묻는 사람들에게도 “주님이 저의 터키어와 경험을 아까워하신다면 일을 주시겠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3년을 넘게 한국 사역자가 빌려준 터키 집의 짐은 20년이 넘는 제 삶의 일부였지요. 혼자 정리했다면 한 달을 두고 선별작업을 했을걸 두 싱글 동료가 도와주어 대충 추려 집을 뺐습니다. 아쉽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하고, 짐을 져준 동료들에게는 감사할 뿐입니다. 덩그런 가방 몇 개와 박스들을 보니 이렇게 철수하려고 마지막 몇 년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냈나 싶은 쓸쓸한 마음이 새삼 사무칩니다. 3주 정도 남은 체류 기간에 터키 현지인들을 만나 작별을 하려고 합니다. 정이 많은 이곳 사람들은 제가 아주 돌아간다는 말에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바쉬 우스트네 예리 봐르” 너를 위한 자리가 있으니 언제든지 자기 집에 오라는 말입니다. 사역으로 맺어진 사역자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정겨움이 묻어납니다. 그들의 사랑을 가슴에 묻고 돌아가려 합니다. 갑자기 울려 퍼지는 모스크의 아잔 소리도 정겨워지는군요. 그간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후원해 주신 분들께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니 사역에서는 은퇴지만 부르심에는 은퇴가 없다는 말씀을 새기면서요.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인사드릴 날을 기대하며 이스탄불에서……
글 장 카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