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 초기부터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는 몇 명의 청년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 하나가 미전도 종족인 난루족 청년 살루입니다. 아직 어리긴 해도 성품이 좋고, 뭘 먼저 해달라고 요구하는 편이 아니라 주로는 뭐가 필요한지 제가 살펴서 챙겨주는 아이에요. 이런 살루에게 지난 몇 달 사이에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작년 12월에 살루를 키워주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올 3월엔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그 아이의 아픔을 채 헤아릴 틈도 없었어요. 한참 시험 기간이던 4월 어느 날 배가 아프다며 시험을 치르러 오지 못했어요. 평소 공부를 열심히 하던 아이라서 정말 많이 아프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데려가고 삼사일을 약이랑 밥을 열심히 챙겨 먹였습니다. 그런데도 전혀 차도가 없어서 조금 겁이 났어요. 이곳 의료 시스템이 워낙 낙후되어 있어 살루의 할머니도 엄마도 그 원인을 모른 채 돌아가셨거든요. 하루 이틀만 더 경과를 지켜보고 차도가 없으면 수도인 비사우로 데리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하루 일과를 마치고 함께 있던 청년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저와 살루만 남아있었죠. 살루에게 엄마의 장례식 이후에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전하기로 결심하고 어설프게 첫 마디를 꺼냈어요. “살루에게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제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아이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스물두 살의 청년이 한참을 소리 내어 우는걸 보니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이별의 아픔이, 그 상실감이, 혼자 남았다고 느꼈을 그 외로움이 얼마나 컸을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살루를 위해 기도를 하고 한번 안아 주고는 집으로 보냈습니다. 다음 날 그동안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살루는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어요.
그리고 한참 후에 살루와 다시 얘기할 시간을 가졌는데, 저는 무엇보다도 살루의 인생에 하나님이 더 실제적인 분이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눴어요. 너무 어렵고 힘들 때, 때론 옆에 있는 사람들도 위로가 되어주지 못할 때 나를 제일 잘 아시고, 그 누구보다도 나를 제일 많이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나눠보란 얘기를 해 주었어요. 그러면서 우리에게 어떤 대가 없이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말했습니다. 하지만 구원은 선행을 통해 이룰 수 있다는 개념을 가진 무슬림에게 이런 은혜를 가슴으로 느낀다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이 은혜를 더 경험하고, 더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의 날들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몇 달 전 살루에게 한국 돈 2만 원 정도의 가격에 중고 아디다스 축구화를 사다 주었어요. 조금씩 나눠서 갚겠다고 했었는데, 엄마 병원비를 돕느라 그동안 갚지 못하고 있다가 지난달 만 원을 가져왔습니다. 살루는 쿵파에서 같이 사역하는 캘리 선교사가 운영하는 학교의 8학년 학생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저학년 수업을 맡아서 학교를 도와주고 있어요. 이 아이가 2학년 수업을 하면서 한 달에 받는 월급은 한국 돈 2만 원 정도입니다. 얼마 전 라마단이 끝나는 큰 명절에 월급의 일부를 먼저 받았답니다. 저에게 만 원을 주고 나니 월급봉투에 달랑 천 원이 남아있었어요. 살루의 엄마가 되어주자고 결심했을 때부터 이미 축구화 값을 받을 마음이 없었지만, 빚을 탕감해 주는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다시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요일 아침 식사를 같이 하자고 불러서 축구화는 엄마가 된 기념 선물이라며 만 원을 돌려주고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요. 원래 감정의 변화를 잘 표현하지 않는 아이라서 잘 알 수는 없었지만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가며 연신 환한 미소를 짓는 것을 보니 ‘몹시 기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좋아하는 살루의 모습에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어요. 우리의 노력으로 구원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또한 어떤 능력이나 자격 때문이 아닌 백 퍼센트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것과 그래서 더 감사하고 감격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이어가며 식사를 마무리했어요.
얼마나 살루가 이 구원의 은혜를 이해할지…… 이 또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주시는 은혜이기에 살루와 제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정말 한 가족이 될 그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살루가 그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그날을 바라고 또 기다립니다. wec
글 곽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