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결혼 한 지 10년이 지난 어느 날 한국성서유니온에서 개최하는 가족캠프에 온 가족이 참여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말씀묵상이라는 것을 배우고 성경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우리는 성서유니온에 많은 빚을 졌다고 할 수 있다. 그때부터 성서유니온에 점점 더 깊이 관여하면서 자원봉사자, 이사, 이사장을 거처 동아시아 이사지구 이사장직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성서유니온 국제이사회에서 중앙아시아에 성서유니온 사역을 개척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당시 동아시아 이사장이었던 나에게 중앙아시아 개발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겼다. 그러나 그 당시 한국에 살고 있어서 할 수 있었던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마음에 부담으로만 가지고 있었다. 그마저 점점 희미해지고 동아시아 이사장 임기를 마치면서 거의 잊었다.
그 당시 한성기업 부사장이던 최철희 장로가 (우리는 50여 년 전에 대학별 테니스 대회에서 처음 만났다.) 치과 진료를 받기 위해 내 클리닉에 방문하면서 우리의 교제가 시작되었다. 그 후에 그가 한국 에 WEC 지부를 창립하는데 함께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의 선교에 대한 열정을 잘 알고 있었고 평소에 워낙 신실한 사람이라서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해 한국 WEC 창립위원회가 결성되었고, 다음 해인 1997년에 한국 WEC이 창립되었다. 그리고 1999년에 한국 WEC의 첫 번째 총회가 열릴 때 주강사로 온 중앙아시아 지역 대표였던 마이크 오더넬 선교사 부부가 우리 집에 3주간 머무르게 되었다. 저녁 마 다 그들과 함께 교제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 선교사로 헌신하는 것이 너무 늦은 것이 아닌지 그에게 물었다. 그는 포도원 일꾼의 비유를 들어 우리가 12시에 부름받은 사람이라며 격려해 주었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서 치과의사인 나를 위해 그가 담당하고 있던 중앙 아시아 지역에 치과의사가 필요한 사역지를 인터넷으로 알아보았다. 그렇게 찾은 곳이 그때까지 한 번 도 들어보지 못했던 K라는 나라였고, 마침 치과대학 후배가 치과 사역을 하며 동역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우리가 선교지로 들어가기 직전에 국제 성서유니온에서는 영국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K국의 성서유니온 사역자로 파송식을 해주었다. 선교지에 들어가 한국 매일성경을 사용하여 설교하고 러시아어로 번역하여 소그룹 모임에 사용하고 있는 교회를 우연히 알게 되어 출석하게 되며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하심을 경험했다. WEC 선교사로서 사역하며 성서유니온의 사역도 이어갈 수 있었다. 성서유니온 간사를 세우고, 현지 위원회를 구성하고, 성경묵상 강의를 시작하고, 한국 성서유니온과 협력하여 매일성경 본문을 3개 국어(성인용 K어, U어, R어, 어린이용 K어, R어)로 번역하여 묵상 노트를 K국 내에 보급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은 코로 나19 사태가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현지의 성서유니온 간사는 성경묵상 본문을 성인용 3개국어로 페이스북, 왓츠앱, 이메일, 텔레그램, K기독교 방송, 한국 성서유니온 홈페이지를 통해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와 러시아 지역에 있는 약 2,000여 명에게 매일 전하고 있었다. 이것이 요즈음 코로나19 로 교회에 모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매일 말씀을 대할 수 있도록 돕고 있으니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하심을 느낀다. 주님께서는 여러모로 부족한 우리 부부를 영광스러운 선교의 대열에 세워주시고 WEC을 통해 중앙아시아 지역에 보내어 우리에게 잊혀진 성서유니온의 사역을 하도록 하셨다. 첫 번째 사역자를 거쳐 만난 두 번째 사역자와는 10년 이상을 그의 온 가족과 함께 부모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도 친가족처럼 지내면서 행복하게 동역해 왔다. 우리는 사역 처음부터 현지인 사역자에게 책임을 부여하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 왔기에 선교지를 떠나기 전 우리의 모든 사역을 현지인 사역자에게 이양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없었다. 2001년 시작한 사역은 지금까지도 잘 진행되고 있으며, 그 사역자와도 자주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
이 외에도 현지 치과의사 교육 사역, 교도소 및 뇌성마비센터 치과치료 사역, 남녀교도소 성경묵상 사역, 여자교도소 출소자 사역, 신학교 사역 (이사, 이사장 역임), 현지 전도폭발 이사, 중앙아시아 선교 연구원 이사 및 러시아 파생어 모음집을 출간해서 현지 선교사와 현지 한국 유학생에게 배포 등의 많은 사역들을 감당하게 하셨다. 선교지에서의 삶을 돌아 보니 부정부패로 소위 말해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는 나라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을 지키며 사는 것이 어려웠던 순간들과 그런 중에 뇌물을 주지 않고 어렵게 어렵게 자동차 면허와 영주권을 획득하여 너무도 기뻤던 기억이 난다. 하나님께 사역을 드리지 말고, 사람을 드리라는 어느 목사님의 말에 공감하며 먼저 걸어온 사람으로서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젊은 사역자들에게 동일한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 모든 일들은 그 땅을 향한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시려는 계획이었음을 우리는 섬김을 통해 알게 되었다.
글 김정태, 황명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