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여기서 벗어날 거야!” 나의 가슴에 묻고 살았던 말.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마음 바닥에 꾹꾹 눌러놓았던 말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왜 목구멍까지 차 올랐던 말을 입 밖으로까지 내뱉지 못했을까 의문이 든다. 내 진심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어릴 적부터 나는 떠날 준비를 하며 살았다. MK로 태어난 내겐 19세에 부모님 곁을 떠나는 건 특별한 이견이 없는 한 변하지 않는, 정해진 운명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건 마치 나는 법을 배운 새가 넓은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것이었지, 평생을 살았던 둥지를 완전히 떠나는 건 아니었다. 어미 새가 있는 한, 새는 둥지로 다시 돌아온다. 내게 선교지, 이젠 차마 부를 수 없는 그곳이란 그런 곳이었다.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하늘로 날아가지만, 언젠가 다시 돌아올 둥지. 안식처이자 유일하게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
“난 여기서 벗어날 거야!”
마음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나의 진심 아닌 진심. 그건 결코 내 진심이 아니었다.
그래, 이건 괜히 삐뚤어져서 있던 어린 나의 심술과도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저 넓은 하늘을 동경하는 어린 새였다. 나의 꿈은 둥지에서 날갯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독수리처럼 두 날개를 펼쳐서 하늘 높이 멋지게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결국 나의 말들은 날갯짓이 날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을 차마 알지 못한 어린 새의 넓은 세상을 빨리 보고 싶다는 비뚤어진 표현이었다. 나는 법을 배우기도 전 넓은 하늘로 뛰어내리고 싶다는 어린 새의 고집과 아집이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바람 아닌 바램을 이뤄주기라도 한 듯이 이는 곧 현실이 되고 말았다.
나는 하루아침에 평생을 살아온 나의 집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아주 지독하게. 전혀 상상치도 못한 억지스러운 방법으로. 둥지를 향한 나의 이별회는 곧 울음 바다가 되었다. 청개구리의 마음이 이리도 이해 간다니. 이게 무슨 청개구리 같은 심보일까? 나는 정말 청개구리와 같은 존재인가 보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다던 마음속의 말들과 그곳에서의 나의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은 더는 그곳을 갈 수 없다는 말에 눈 녹듯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돌아가고 싶다는 진심과 그곳에서의 하루하루 행복했던 기억들로 채워졌다. 나는 그곳이 간절히 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인생이란 현실은 행복한 결말의 동화가 아니었다. 아직 그곳에 남아있는 나의 마음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곳에 멈춘 나의 시간들을 남겨둔 채 시곗바늘은 멈추지 않고 흘러갔다. 그렇게 나 역시도 그곳의 시간들을 버려둔 채 새로운 시간들을 채우게 되었다. 하지만 늘 나에게는 잊히지 않는 향이 있다. 그곳의 향. 그곳을 그리는 나의 마음 깊숙이 간직한 향수. 나는 언젠가 그곳으로 돌아갈 거야. 돌아가지 못한다고 해도 나는 돌아갈 거야. 그리고 언젠가 그곳으로 돌아가겠지. 나는 오늘도 그곳의 꿈을 꾼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나는 또다시 오늘이라는 새로운 시간을 살아간다. 이제는 그곳이 더는 내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건 그곳이 아니라 그곳의 남겨진 나의 시간이라는 것도 안다. 결국 내가 그토록 그리던 건 나의 가족 모두가 한 곳에 모여 함께 살아가던 그림일 테니깐. 나는 그곳의 미련을 버렸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다 하여도 내가 그리고 그리던 그림은 현실이 아닐 테다. 나는 그곳을 내 과거의 한 페이지로 남겨두기로 하였다. 나는 비록 그곳에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간다 하여도 내가 그리워하던 삶을 살아갈 수 없지만, 그곳에서 채운 페이지로 인해 소중한 시간들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항상 어려움을 겪을 때면 그곳을 떠올린다. 당장은 더높은 하늘을 날아오르고 싶고 날갯짓이 힘들어도,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더 이상 심술을 부리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이때를 추억할 날이 올 걸 확신하기 때문이다. 아프고 힘든 이러한 나날들이 나라는 인생의 페이지를 계속해서 채워줄 테고, 다음 페이지를 그려갈 수 있게 해줄 테다.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 다음 페이지를 써 내려가기 위해서.
인생이라는 한 권의 아름다운 책을 그리기 위해서 나는 내 인생의 시작점이 되어주었던 그곳의 이야기를 첫 페이지로 영원히 기억하려고 한다.
글 박모아 (비자발적 출국 M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