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자로다!

by wecrun

안식년을 마치고, 폐암수술을 한 친정 어머니를 돌보느라 한 달 늦게 그리운 가족이 있는 선교지 J국으로 돌아왔다. 코로나로 많은 가게가 닫히고 수도에는 배달문화가 조금씩 발달해가는 것이 신기했다. 친구들과 이웃들의 안타까운 죽음의 소식도 듣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2주를 보내며 서서히 다시 선교지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에 아들과 태권도 놀이를 했는데, 그날 밤부터 아들과 놀다가 발차기를 당한 복부에 극심한 통증이 시작되었다. 이후 열이 39도가 넘고 해열제로도 잡히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현지 병원으로 가게 되었고, 간의 기생충 혹이 복강으로 터져 나와 응급수술을 해야 한다는 기가막힌 통보를 듣게 되었다. 아마도 10년 이상 된 기생충 혹일 수도 있다는 현지 의사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고 곧바로 현지 병원에서 응급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열은 떨어지지 않았고 퇴원 후 집에 가서도 계속 항생제와 해열제로 버티다가, 수술 후 17일째 결국 한국행을 선택했다. 비행기에서도 계속되는 고열을 약으로 버티며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태극기를 발견하고는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읊조렸다.

이후 많은 분들의 기도와 도움으로, 인천공항에서 곧바로 부산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이동했고, 자가격리와 강력한 항생제 투여에도 열은 떨어지지 않았다. 의료진들은 큰 수술을 해야하고 선교지에 더 이상 못 갈 수도 있다고 하셨다. 그러던 와중, 담당 외과 선생님의 손에 부상이 생겨 시간의 틈이 생겼고, 결국 서울행을 결심했다. 혼자 한국으로 돌아왔기에, 아픈 와중에 순간순간 모든 결정을 남편 없이 혼자 내려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함께 하시는 주님을 더욱 의지하는 기회가 되었다. 내가 감염된 기생충의 수술에 대해 아는 한국 의료진이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주님께 매달렸다. 살려달라고, 열 좀 떨어지게 해달라고.

감사하게 수술 일주일 전부터 열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그렇게 아프기 시작한 이후 거의 두 달 만에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간 60%와 쓸개를 절제하고 복부에 터져나온 기생충의 알들과 찌꺼기를 씻어내고 J국에서 한 복강경 수술로 유착된 부위를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

온라인 다니엘 기도회와 기적을 구하는 시댁 식구들의 금식. 그리고 전 세계에서 많은 분들의 기도와 함께 6시간 가량의 수술을 마치고 병실에 돌아왔다. 방사통으로 바로 누워 잘 수 없었고 15분 마다 강한 진통제를 투여하지 않으면 숨을 쉴 수조차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하루 이틀이 지나며 병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과 웃음 소리,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나를 미소를 짓게 했다. 열은 사라졌고 기생충 혹들은 모두 제거되었다!

 

지금 나는 수많은 중보기도의 은혜 속에 아버지의 사랑을 날마다 마주하며, 수술한 지 두 달이 지났고, 이제는 햇볕도 쐬고 산책할 만큼 많이 회복되었다. 너무 보고 싶은 가족이 있고 아버지의 마음이 계신 곳으로 한마음을 품고 돌아갈 준비를 하는 중이다. 아들의 태권도 킥이 나를 살려준 격이다. 그 일이 아니었다면 내 뱃속에 거대한 3개의 기생충 혹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을 테니… 제 잘못인줄 알고 미안해하는 아들에게 덕분에 살았으니 안심하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었는지 아득하다. 신기하게도 난 수술 전 매일 주님과 부흥회를 했다! 온라인 기도회 시간은 내게 은혜의 도가니였고, 주님과 매일 춤추며 방안에서 울고 웃으며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이었다. 선교 사역이 어느 순간 우상이 되어있던 내게 주님은 회개의 눈물과 기쁨을 주셨고, 선교사로서 회의를 느끼고 두 마음을 품고 선교사를 그만두고 다른 것을 해보고 싶어 도망가려 하는 내게, 주님은 ‘한마음’을 말씀하셨다.

선교지에서 그렇게 갈망하던 주님과의 뜨거운 시간이, 약봉지를 한 움큼씩 쥐고 있는 이 시간에 육신의 수술과 영적인 수술이 같이 진행되게 하실 줄이야! 몸은 아프고 피곤했지만 내 입술은 주님을 찬양했다. 주님은 내게 ‘너는 행복자라!’ 말씀하셨고 주님과 함께 고난에 참여함이 영광이라 하셨다. 이제는 주님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려는 나의 욕심과 종교적 야망을 버리고, 주님이 쓰시기에 적합한 날마다 깨어지는 깨끗한 질그릇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여전히 혈기 왕성한 나의 옛 자아가 불쑥불쑥 올라올 때마다 나는 배를 가로지르는 긴 절개선을 보며 ‘나는 죽었지…’. 하고 되새긴다. 그리고 매일 함께하시는 주님의 성실하심을 찬양하며, 복음을 전하는 이 복된 자의 자리에 다시금 나를 불러주신 아버지께 감사한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글 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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