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미얀마

by wecrun

미얀마는 1962년 네윈 장군이 쿠데타로 정권을 거머쥐고, ‘불교식 사회주의’를 앞세워 나라의 문을 걸어 잠그고 완전 군부독재 체재를 만들었다. 이후 2007년 샤프란 혁명이 일어나 시위를 주도하던 많은 젊은 승려들과 이에 동참한 지역의 청년들은 군부에 의한 무차별 체포, 고문, 실종 등으로 희생되었다. 이 사건으로 군부는 국제사회의 압박을 받게 되었고, 2008년 군부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헌법개정을 부정 선거를 통해 통과시켜, 민간정부 형태의 외형만 민주주의인 국가의 기초를 만들었다. 2010년 절대 권력자였던 군 통수권자 딴쉐가 대통령제를 만들고, 대통령으로 우 떼인세인을 세웠다. 하지만 우 떼인세인은 군부 안의 개혁파로 나라의 발전을 위해 많은 부분에 변화를 가져왔고, 외부를 향해 빗장을 열고, 가택연금 상태에 있던 아웅산 수지를 풀어주고 정치활동을 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2015년 선거에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후보에 불출마하여, 아웅산수지의 NLD당이 국민의 열렬한 지지 가운데 최초의 민선 정부로서 자유국가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5년 동안 아웅산 수지의 정부는 자유와 민주화를 이루며 많은 부분에 발전을 가져왔다. 2021년 1월에 UN에서 ‘미얀마는 최빈개도국(Least Developed Country)에서 졸업할 수 있다’고 발표할 만큼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면에는 군부에 손발이 묶인 정부의 어려움도 있었다. 아웅산수지는 첫 정치 행보로서 소수의 반군들과 ‘뉴(New) 삔롱 협정’을 맺었다. 이는 아웅산 수지의 아버지 아웅산 장군이 수십 개의 반군들과 1947년에 소수 민족들과 자치권을 인정하는 연방제 도입과 민족 간 평등의 원칙을 세운 ‘삔롱(샨 주의 도시) 협정’을 기념하여 새롭게 만든 협정이었다. 그러나 군부는 바로 다음 날 이들 반군에게 포격을 가했다. 미얀마 정부의 재정 수입의 상당 부분은 군부의 손에 있고, 군 최고사령관이 국방부장관, 안보내무장관, 국경장관의 임명권도 가지고 있다. 아웅산 수지의 정부는 이러한 군부 권력만을 위한 헌법을 고치고자 노력해 왔다. 그 결과 2020년 선거에서 25%의 국회의원수를 자동으로 가져가는 군부를 대항해서 헌법 개정 발의가 가능한 국회의원의 정족수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리고 헌법 개정을 위한 국회 개원 일이 바로 2021년 2월 1일이었다.

선거에 참패한 군부는 아무런 증거도 없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며 ‘헌법은 손도 대지 말고 어떤 것도 변화시키려 하지 말 것’을 요구하며 정부와 협상을 원했다. 하지만 정부가 군부에 국가 발전을 위한 헌법개정의 필요를 내세우며 팽팽하게 맞서자, 결국 무력으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군부는 전화, 인터넷, 모든 통신 수단을 차단하고 아웅산 수지와 그 내각을 체포하여 구금시켰다. 그러나 이 배후에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땅 큰 나라가 있다. 이 나라는 군부독재 시절 미얀마의 큰형님을 자처하며 많은 UN의 제재들을 막아주며 미얀마의 풍부한 자원들을 싹쓸이하다시피 가져갔다. 미얀마의 민주 정부를 다루기가 녹녹치 않자 예전의 말 잘 듣던 군부 독재로 돌리고자 군부에 힘을 실어 주었다. 미얀마의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키기 전 이미 땅 큰 나라의 재가를 얻고, 협력에 대한 약속을 받아 이 비극의 문을 열었다. 쿠데타가 시작되자마자 그 땅 큰 나라는 IT 특수 장비들과 함께 전문가들을 파견해서 특정 사이트 차단과 검열 그리고 색출 작업을 시작하였다.

군부는 점차 시위 규모가 커지고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자, 예전 1988년 민주화 시위대 3천 명을 학살했던 잔인하고 무자비한 방법으로 탄압하고 있다. 최소 800명이 넘는 사람을 이미 죽였고, 5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체포, 구금, 고문하며 인권 유린을 자행하고 있다. 5월 15일에는 군인 수 천명을 동원해서 ‘민닷’이라는 도시를 점령하기 위해 일반 시민들을 붙들어 인간 방패로 사용하였다. 이 잔인함은 지금 21세기에 일어나리라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의 자유 민주주의를 경험한 청년 세대들은 격렬하게 저항하며, 미얀마의 실상을 인터넷과 SNS를 통해 빠르게 전하며 자신들의 반대 의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광범위한 시민 불복종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은행, 철도, 초 중고, 대학교, 병원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공무원들과 교사들이 군부 아래서 일할 것을 거부하며 기꺼이 퇴직 당하고 있다. 현재는 사회 전반에 걸쳐 거의 모든 것들이 멈춘 상황이다. 하지만 이러한 저항 운동에도 한계가 있다. 지난 군부와 연계되어 재물을 모았던 상당수 부자들은 군부 편에 서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은 결과가 어찌 되든지 빨리 이 혼란이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다. 가파르게 오른 생필품 가격, 정지된 은행, 문을 닫는 직장들로 이미 상당수의 저소득층의 사람들은 굶주림에 고통받고 있다.

이번 저항운동에서는 2007년 샤프란 혁명을 주도하며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승려들이 일어났던 것과 다르게 승려들의 모습은 거의 볼 수 없다. 극우 승려들은 로힌야족을 학살하고 미얀마에서 쫓아낼 때 군부와 합세했으며, 다른 일반 승려들도 민족 화합을 위해 친족 기독교 부통령을 세운 아웅산 수지의 정부에 등을 돌렸다. 100만 명에 가까운 승려들 중에 시위에 동참하는 수는 극히 적다. 미얀마 인구의 65%를 차지하는 버마족, 3천5백만 명중 97% 이상이 불교도이다. 이들은 자유를 위한 저항운동에 함께 하지 않는 승려들의 모습에 실망하고 있다. 옳은 것을 말하거나 표현하는 것을 막고, 거짓과 속임수로 국민들을 기만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군부는 막강한 권력과 군사력, 돈을 가지고 그 힘으로 인권을 유린하고 대항하는 자들의 생명을 앗아 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자유를 지키려 자신들의 직장, 희망, 생명을 포기하면서까지 저항의 세 손가락을 드는 이들을 지지하고 동조해 주는 나라가 없다. UN과 서방세계가 경제제재 외에 더 이상 군사적으로 돕지 않는 것에 대한 이들의 실망감은 오히려 학살을 묵인하는 UN에 대한 반감으로 표출되고 있다.

잔악한 군부 아래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며 필자는 말할 수 없는 절망과 무력감 속에서 큰 고통을 느꼈다. 이들의 아픔을 안고 울며 오직 하나님을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며 기도한다. 고통하는 이 백성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직장, 희망, 생명을 포기하면서까지 저항의 세 손가락을 들었던 이들이 진리 위에 서서 참 자유와 소망을 얻고 기쁨의 눈물로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들어 영광을 돌리는 그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wec

글 마삼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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