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바그다드에서 온 한 이라크 형제와 같은 공동체에서 산적이 있었다. 영어가 유창한 그는 자기 나라에서 치러지고 있는 전쟁에서 미국군을 위한 통역사로 일을 했었는데, 그와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차례로 암살당하자 미국으로 난민 신청을 하게 되었다. 전쟁 전 이라크에서 최고의 학벌과 안정적인 직업으로 장래가 촉망되었던 그 형제는 졸지에 난민이 되어 “전쟁의 트라우마, 가족을 잃은 비통과 슬픔, 불안과 공포 그리고 환영받지 못하는 이방 땅에서의 소외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라는 단어들을 지닌 채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필자가 2011년부터 섬기고 있는 Korean Global Mission Leaders Forum(KGMLF:한국 글로벌 선교 지도자 포럼)에서 “난민”에 관한 토픽을 다룬 후 지난해 영문과 한국어 서적을 출판했다. 2017년 11월 속초에서 있었던 그 포럼에서 시리아 출신의 미카엘 박사는 “시리아는 아랍의 봄이 일어나기 전에 중동 전체에서 가장 안정적인 나라 가운데 하나였죠. 예배의 자유, 무료 교육, 무료 입원, 자유로운 사업 활동. 그러나 한순간 수십 개 국에서 온 전투원들의 전쟁터로 변했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신앙 때문에 죽임을 당했죠. 때문에 제가 지금 난민 구호 활동하고 있는 레바논으로 탈출한 난민이 150만 명으로 추정이 되는데 그중 적어도 50만 명 정도가 3~14세 아이들로, 그들은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어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라고 호소했다. 이러한 안타까운 소식을 들을 때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난민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죄악된 인간의 본성인 “제노포비아¹”를 따라 가이사의 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인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어떤 목사는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선교하는 것은 좋지만 무슬림들이 한국 땅에 들어오는 것은 안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지난 50년의 결혼생활 동안 17개국 출신의 무슬림, 불교인, 공산주의자, 무신론 등 다양한 난민들과 이방인들을 자신의 집에 환대하여 자신의 가족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인 조나단 봉크 박사는 한국 교회를 향해 다음과 같이 도전한다. “예수를 따르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난민과 이주자 그리고 고아와 과부를 무시하고 묵살하는 모든 이기적인 민족주의, 종족주의 그리고 인종차별주의들에 대해 저항해야 한다.” 그는 계속해서 “교회가 소위 불법 이민자와 난민들의 존재를 소극적으로 무시하거나 적극적으로 반대한다면 결과적으로 그들은 그리스도를 문밖에 계속 세워 두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이방인과 소외된 자들을 통해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오시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하였다.
성경의 가르침은 분명하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출 22:21),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같이 사랑하라(레 19:34)” KGMLF 포럼에서 크리스토퍼 라이트 박사는 “성경에서 말하는 두가지 사랑의 계명은 하나님의 성품과 행동에 전적으로 뿌리내린 것인데, 이스라엘 땅에 살고 있는 이방인과 나그네를 향한 실제적인 사랑으로 절정에 이르고 있기에, 그러한 사랑의 실천을 낳는 것이 구약과 신약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따라 살아간다.”는 뜻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 wec
글 김진봉 (KGMLF)
사진: Unsplash의 Julie Ricard
1 제노포비아: 이방인(제노: xeno)과 공포증(포비아: phobia)의 합성어로, 모든 사회 범죄나 문제를 외국인의 탓으로 돌리는 외국인 혐오증을 뜻한다. (편집주)